절벽에 매달려 본 적 있는가
절벽에 매달려 본 적 있는가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8.0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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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매달린 절벽에서...>

"어떻게 하면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

[북데일리] 동서양의 철학을 넘나드는 철학자 강신주가 선불교 화두 모음집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동녘.2014)을 들고 나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1228년에 나온 가장 압축적인 선불교 핵심 정신 48개의 화두를 골라 <무문관>의 순서를 해체해 새롭게 구성하고 무아'를 읽어내어 불교철학의 이론과 함께 버무려 들려준다.
 
 삶의 차원에서 매순간 중요한 문제는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만일 두 가지의 문제가 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삶의 차원이 아니라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그저 관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중략)두 가지 문제가 모두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두 가지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는 신세입니다. 한쪽 길로 가려고 해도 더 깊게 멀리 가지 못하고 곧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서 다른 쪽길로 가려고 합니다.(p379)
 
 '무문관' 은 '문이 없는 관문'을 뜻한다. 고난도의 화두다. 화두는 상식을 넘어서야 풀릴 수 있는 문제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정 주목하는 선불교 핵심 정신이기도 하다. 상식을 넘어선다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삶을 살라는 의미이며 그래야 화두는 풀리는 문제라며 "말할 수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묻지 않겠다"는 싯다르타의 침묵에 대해 언급한다.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 그건 우리가 그것에 좌지우지된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도움이 되어도 그것이 외적인 것이라면, 어느 순간 반드시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만 합니다. (…)‘스스로!’계단과 사다리로 상징되는 일체의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온몸으로 깨닫지 않는다면, 그건 깨달음일 수도 없는 법이니까요. 깨달음은 스스로 주인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p382)
 
 저자는 무문관을 뚫어 내는 여정 속에서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주인의 삶을 살고 있느냐고 말이다. 절벽에서 계단이나 사다리에 의존해 절벽에 매달려 있을 것인지, 그 계단과 사다리를 걷어차고 스스로 설 것인지를 말이다.

 더 나아가 무문관 48개의 관문에서 어떤 외적 권위에도 휘둘리지않는  자신만 주인공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타자도 주인공의 삶을 살도록 돕는 타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인문학의 강력한 신을 발견한다. 바로 선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이다.  자신도 이롭게 만들고 타인도 이롭게 만듦을 뜻한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 ‘자신에 대해 주관적인 것’이라면, 그곳에 발을 떼고 평지로 내려오는 것은‘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사람은 타인의 주관이나 주체를 의식하는 사람, 즉 타인도 그만의 본래 면목으로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지요. (…)자기만이 주인이 아니라 타인도 주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손님의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이렇게 백척간두에서 내려온 사람만이 세계에 자신만이 주인이 아니라,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타인들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p366, p367) 

 저자는 <무문관>의 48개 화두를 통해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가이드역할을 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삶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아가야 하는 불교정신을 잘 보여준다. 자유를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 문이 없는 관문을 뚫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나'를 만나는 이야기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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