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이 밑줄 친 문장들
안도현 시인이 밑줄 친 문장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8.0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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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나는 당신입니다>

[북데일리] 시인은 어떤 문장에 마음이 가고 손이 갈까? <나는 당신입니다>(느낌이있는 책.2014)는 안도현 시인이 서가에 꽂힌 책에서 밑줄 긋고 싶은 시와 문장을 고르고, 읽은 느낌을 담아 편지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책은 절판된 <100일동안쓴 러브레터>라는 책에 숨구멍을 찾아 날숨은 빼고 들숨으로 새롭게 불어 넣어 시와 문장을 감상하는 맛이 색다르다.

먼저 존 그레이의 산문<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인상 깊다.  유명한 '동굴이론'이다.

여기서 동굴이란 남자가 조용히 혼자 숨어 있고 싶은 절대고독의 공간이지요. 존 그레이는 그 동굴 속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 불러내지 말라고 조용히 충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자꾸 동굴 밖으로 불어내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남자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을 하지요.(47쪽)
 
 살다보면 비슷한 상황을 겪기 마련이다. 이와 비슷한 문장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다.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혼자 있게 두는 것, 그게 최대한의 관심이다.'

최승호의 산문 <물렁물렁 한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도 범상치 않다. 

사막의 모래쥐와  식물들에게 1mm의 비는 반죽용 물 같은 것이다. 연중 강우량 1mm로도 모래쥐 새끼들이 태어나고 사막식물은 번식한다. 만약 내가 사막의 모래쥐로 태어났다면 종교 이전에 1mm의 비에 기뻐했을 것이다. 종교 전쟁이 터지든 말든 나는 사막에서 1mm의 비를 기다렸을 것이며 긴 목마름 속에서도 나의 삶이 가난하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조차 품지 않았을 것이다.(166쪽)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에서 살아가는 수백 종의 동식물의 삶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시인은 새만금 지역 동식물이나 사막 쥐에게 사막이나 그들에겐 천혜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그들에게도 삶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 여자는 아무래도 그런 일이 서툰 듯 했어요. 어머니께서는 한눈을 파시면서도 단숨에 척척 해내는 무생채 써는 일은 특히 말이에요. 어머니도 도마질 소리는 깎둑깍둑깍둑...경쾌했지만, 그 여자의 도마질 소리는 깍...뚝...깍...뚝...이었어요. 그렇게 그 여자는 파란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대신 그 대문으로 어머니께서 자취를 감췄습니다.(200쪽)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까마득한 대구 자췻방 시절을 떠올린다. 자신이 서투른 칼질로 무생채를 썰자, 보다 못해 옆방 새댁이 대신 무 써는 일을 도와줬다. 그 숙련되고 경쾌한 도마질 소리가 가슴 찡하게 스며들었다며  풍금은 보여주지 않고 풍금소리를 들려 준다는 것에 감동을 전한다.
 
책은 따듯하고 투명한 시인의 성정처럼 설렘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빛바랜 수첩에서 그의 감수성으로 채워진 메모를 발견한 듯 설렌다. 그가 밑줄 그은 시와 산문에 덧보탠 감수성이 8할이다.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안도현의 시와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에게 건네받는 손 편지 느낌일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이 독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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