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동화 다시 읽어보니 '놀라워'
낡은 동화 다시 읽어보니 '놀라워'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2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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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북데일리] 우리 시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탐서가들이 동화책 한 권씩 손에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반비.2014)엔 건축가 김진애, 라디오 피디 정혜윤, 서울도서관장 이용훈, 소설가 황경신, 영화 기자 김혜리, 번역가 홍한별, 등  서가 깊은 곳에서 내 인생의 동화라 할 작품들을 꺼내와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때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감동과 교훈들을 전한다.
 
 어쨌든 저는 인어 공주도 아니고 그것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인어 공주>를 계속 읽겠습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요. 저는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는 아니지만 <빨간 망토>를 계속 읽을 것 같습니다. 세상엔 친절한 할머니의 목소리를 내는 늑대가 우글거리니까요. 저는 아기 돼지는 아니지만 <아기 돼지 삼형>를 읽겠습니다. 내 집을 부서뜨리거나 나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늑대가 우글거리니까요. 제가 드라큘라는 아니지만 <드라큘라>를 읽겠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혼이 없으면 남들의 피나 빨아먹고 살 수밖에 없단 걸 알려주니까요.(14~15쪽)
 
 방송 프로듀서이며 서평가인 정혜윤에게 <톰소여의 모험은> 각별하다.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전학 왔던 얼굴 하얀 소년을 떠오르게 한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책을 쓰면서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그가 최초의 책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의 동화의 힘은 대단하다.
 
 사회인이 되어 영화에 관한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통해 글로 인물을 스케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면서는, 내 잠재의식에 입력된 좋은 서사와 대사의 조건, 존중할 만한 인간상, 매혹적인 자연 이미지의 원형이 엘리너 파전의 이야기와 에드워드 아디존의 그림에 얼마나 많이 빚지고 있는지 발견하고는 이따금 소스라친다.(32쪽)
 
 영화 기자 김혜리의 말이다. <보리와 임금님>이 그녀에겐 둘도 없는 친구였다. 낯가림이 심해 친구 사귀기가 서툰 여자 아이이게 책은 단짝 친구로 소속감을 주었다. 기자가 된 현재까지 '좋은 서사와 캐릭터의 원형'을 선물해 주었다.
  
 <앤> 이야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앤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어떤 소녀든, 어떤 여자든 앤에게 금방 친밀감을 느끼고 동질감까지도 갖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앤의 콤플렉스에 절절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홍당무 같은 빨강머리, 얼굴 가득한 주근깨가 아니더라도 외모 콤플렉스를 갖는 것은 모든 소녀의 ‘권리’ 이기조차 하지 않은가.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다는 심정, 누구도 날 좋아해주지 않을 듯한 외로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답답함 등 앤의 열등감과 고독감과 불안에 공감하지 않을 소녀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앤은 고아이기까지 하니 말이다.(74쪽, 75쪽)
 
 건축가로 20여권의 저술가로,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는 김진애는 자신의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과 꼭 닮은 씩씩한 소녀 '빨강머리 앤'을 얘기했다. 그녀는 앤을 통해 인생이란 꽤 긴 과정이며 그 과정 자체로 의미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며 지금도 중요한 시기마다 꺼내 읽는다고 하니 빨강머리 앤을 아는 독자로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 세계는 오직 사랑 안에서 생성되며, 오직 사랑의 법칙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 세계 안에서는 꽃이 말을 걸고 두레박이 노래를 부르고 사막이 그리움으로 출렁인다. 단 한 사람에 의해 밤하늘의 별들이 한꺼번에 울다가 한꺼번에 웃는다. 우리 모두, 한때 그런 세계에서 살았다. “불과 삼사 년 만에 거장처럼 그리는 법을 배웠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일생이 걸렸다.”고 피카소가 말했다. 일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 그날 그 풍경 속으로 우연히 걸어 들어온 어린 왕자를,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그토록 무모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107쪽)
 
 소설 쓰는 황경신은 여덟 살 때 외갓집에서 읽은 <어린 왕자>를 기억한다. 낮잠을 자다 깨어 우연히 들어간 창고 안에서 책을 발견하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던 기억은 듣는 것 만으로도 아름답다. 그 풍경은 고스란히 마음에 담겨 있다가  작가가  되고 훗날 사랑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깨우쳐 주었나 보다. 나이 들어 다시 읽는 동화는 어떨까.

 
 나이가 들면 위반하고 깨뜨릴 수 있는 게 별로 남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켜온 몇 안 되는 것이라도 지키고 싶을 뿐. 스무 살 때에는 벗어던지고 싶었던 고리타분한 도덕심이라든가 염치, 자존심 같은 것을, 이제는 애써 붙들지 않으면 너무 쉽게 속 좁고 꽉 막히고 천박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다. 이제 나에게 딱히 순수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테니. 그렇지만 이미 늙음이 육신에 침범한 지금도 나는 예뻐지고 싶다. 날마다 아름다움을 꿈꾼다.(157쪽)
 

 어린 홍한별에게 <빨간 구두>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번역가인 그녀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빨간 구두>는 탐나도록 아름다운 것에 대해 두려울 만큼 커다란 동경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어른이 된 지금<빨간구두>는 소비사회의 욕망으로 다가온다니 이해가 된다.
 
 책은  우리시대 교양인들의 영혼을 완성한 동화 얘기다. 그들은 어린 시절 온몸으로 읽었던 고전 텍스트를 어른이 되어 읽게 되면서 놀라움을 경험한다. 새로운 지식과 가치는 다시 읽는 동화를 통한 시간 여행처럼 느껴진다. 명작 동화들은 시대나 세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읽힌다. 인생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동화는 힘이 세다. 사람이 썼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 어릴적 읽었던 동화가 궁금하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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