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한 줄 시에 우주 담다.
하이쿠-한 줄 시에 우주 담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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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우주, 진리, 사람의 됨됨이, 사물의 깊이와 넓이,  시선,  시와 산문,..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크기와 합이 다 다르다.  눈에 보이는 합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이쿠를 보면.
 
[북데일리] 류시화 시인의 하이쿠 모음집 <백만 광년 고독속에서 한줄 시를 읽다>(연금술사.2014)이 화제다. <한 줄도 너무 길다> 출간 후 14년 만이다. 이번 책은 하이쿠의 번역소개는 물론 시인 자신의 작품해설도 150쪽에 이른다. 책에는 에도 시대의 바쇼, 부손, 잇사, 시키에서부터 현대의 하이쿠까지 130명 시인들의 하이쿠 1370여 편이 실려 있어 450년전의 하이쿠속으로 안내한다.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바쇼)
"오두막의 봄/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게 있다."(소도)
 
 누구나 좋아하는 바쇼의 시다. 봄날 벚꽃 아래서 만난 고향 친구와의 재회를 그린 하이쿠다. 류시화는 지난날 벚꽃을 함께 본 친구를 그 나무 아래서 만남의 감격, 옛날의 추억과 지금 순간에 살아 있음의 기쁨을 읊는다. 시인은 곁들인다. '한개의 생 사이에 또 하나의 생을 가진 벚나무꽃은 두생이 떠나가도 영원히 꽃은 필 것이다. 봄의 하이쿠는 순간에 피는 꽃이 주는 선물이다. 소도의 시는 기교가 없어도 모든 아름다우며 삶이 이어지는 봄날이다. 봄날은 한낮 꿈처럼 짧지만 꽃이 있어 더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된다. 
 
"물 항아리에/ 개구리 떠 있다/ 여름 장맛비."(시키)
여름이라 마른거야/ 그렇게 대답하고 / 이내 눈물짓네."(기긴)
 
 비가 잦은 여름은 인간에게나 미물에게나 침잠하게 만든다. 개구리에게 물 항아리는 하나의 세계다. 그 공간에 장맛비 쏟아지면 개구리는 정적에 파묻힌다. 물항아리에 떠 있는 개구리는 고인 물 같다. 하이쿠의 스승답게'기긴'은 계절을 읊는다는 뜻이다. 여름이라 입맛이 없어서 그렇다고 답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건 감출 수 없는 게 마음인가보다. 자신은 좋은 시를 많이 남기지 못했지만 바쇼와 소도 같은 뛰어난 제자들을 키워냈다. 임종 때 쓴 시가 묘비명으로 새겨져 있다.
 
"달에 손잡이를 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소칸)
"보름달 뜬 밤/ 돌 위에 나가 우는/ 귀뚜라미."(지요니)
 
 소칸의 시는 해학을 바탕으로 기지와 재치가 뛰어나다. 서로 관계가 먼 둘 사이를 예술적으로 이어준다. 운치 있는 달을 소재로 하며 편안한 정서가 서민적이라는 평이다. 이것이 하이쿠를 쉽게 풀어주는 소칸 만의 능력이지 싶다. 단 한 줄의 시에 함축과 절제로 씌어졌지만 모호하거나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다. 가을의 정취 중에 환한 달밤은 빼놓을 수 없는 경치다. 류시화 시인의 해설에 따르면 지요니가 시코에게 하이쿠를 몇 편 지어주자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 지적했다. 지요니는 밤새도록 고민해 날이 밝아서야 다음 하이쿠를 지었다. "두견새  두견새 생각하다 날이 밝았네."
 
"눈 녹아/ 온 마을에 가득한/ 아이들."(앗사)
"겨울의 물/ 나뭇가지 하나의 그림자도/ 속이지 않고."(구사타오)
 
 구사타오의 대표작 중 하나다. 겨울을 나기위해 부릴 것 다 부리고 뼈만 남은 나무의 모습이 수면에 비쳐 있다. 투명하다 못해  오히려 물에 비친 허상이 실제의 나무보다 저 실제처럼 여겨진다는 류시화 시인의 해설이 차고 맑은 얼음 같다. 천편이 훌쩍 넘는 하이쿠의 정수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담아 보는 일. 450여 년 전의 기운을 느껴보는 일이다.
 
 옛날 중국의 어느 시인은 그랬다. "말해야 할 것을 열두 행으로 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하이쿠는 그것보다 더 짧게 말한다. 이렇듯 단 한 줄에 담긴 하이쿠는 반쯤 열린 문으로 우주의 섭리를 보여준다. 5.7.5. 열일 곱자의 합은 하이쿠의 정수다. 무덥고 지치는 여름, 그 향연 속으로 빠져 보면 어떨까.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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