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서정으로 길어올린 샘물 같은 글
투명한 서정으로 길어올린 샘물 같은 글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2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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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승 시인의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밤이라는 어둠이 없으면 새벽은 결코 찾아오지 않습니다. 빛은 어둠이 없는 상태가 아니고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빛과 어둠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당신과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북데일리] 물은 투명하다. 제 고유의 색이 없다. 흐르면서 스스로를 맑힌다.  시인 정호승의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해냄.2014)가 그렇다. 투명한 서정으로 길어 올린 글들은 마중물 <새벽편지> 로 샘물 41편을 뿜어 올려 넘실거린다. 시인이 떠 주는 한 바가지의 물맛은 시원하고 한결같다.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소홀해지기 가족과 이웃에게서 감사와 배려를 발견하게 한다.
 
 모든 꽃은 밤이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아침에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하여 고통스러운 밤을 참고 견딘다. 신영복 선생께서는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인생은 목표의 달성과 완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준비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누가 인생을 완성하고 떠났을까. 아무도 인생을 완성하고 떠난 이는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떠났을 뿐이며,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완성이다.(p63)
 
 시인의 동화 <선인장이야기>다. 아들 선인장이 아버지 선인장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결국 죽게 된다는 이야기는 밥상머리 말씀 같다. 인생은 목표의 달성과 완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생을 완성하고 떠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떠났으며 그게 바로 완성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아이들에게 신발은 그저 신발일 뿐 변형의 즐거움을 주는 상상력의 매체는 아니다. 섬돌 위에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 한 짝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방 안에 누가 와 있는 줄 대뜸 알아차리던 시절은 이미 다 지나갔다. 모내기철에 시골에 갔다가 논둑 위에 막걸리 주전자와 김치보시기와 고무신 몇 켤레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가슴이 찡해지곤 했는데 이젠 그런 풍경도 만나기 어렵다.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아름다움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p174)
 
 시인의 고무신에 얽힌 얘기는 가슴을 애잔하게 하면서 솔곳한 재미가 있다. 고기를 잡을 때, 찰흙놀이를 할 때, 고무신에 가득 퍼 담던 어릴 적 고무신이 아이들에게 어떤 물건이었는지 들려준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궁핍했으나 소소한 일상에서 재미거리를 만들 줄 알았던 그때가 그리워지게 한다. 자연과 사물에도 친근하고 깊었던 시인은 사람의 삶과 마음에 기울이는 관심 또한 애틋하다. 
 
 이제 낙엽을 쥐여드리던, 눈뭉치를 얹어드리던 아버지의 손은 더 이상 잡을 수가 없다. 밤마다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손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오늘은 내 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버지의 손이 떠오른다. 아침마다 어린 내 손을 잡고 초등학교 정문 앞까지 바래다주시던 젊은 날의 멋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아버지의 손에 맞아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나를 단 한 번도 때리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야단맞을 일이 수없이 많았지만 주먹이 된 아버지의 손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손은 항상 내 손을 잡기 위해, 나를 쓰다듬어주기 위해 존재했을 뿐이다. (p326)
 
⁠ 부자간의 정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남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산 같은 존재를 느낀다는 말이 오롯하다. "아버지는 이제 삶이라는 여행을 끝내고 죽음이라는 여행을 더나신 겁니다. 라는 시인의 말이 애잔하면서도 아프다. 책은 아픔, 기쁨, 미움과 용서를 담아내고, 사랑과 이별, 나이 듦과 거듭남을 일깨운다. 삶을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소중은 것이 무엇인지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다.

 시인의 글과 함께 시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박항률 화백의 '명상화' 가 실려있어 책은 한결 웅숭깊고 맑다. 시인의 글과 박항률 화백의 그림은 합이 조화롭다.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싶다면 샘물 같은 책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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