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그늘을 보게 하는 힘!
고통, 그늘을 보게 하는 힘!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20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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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의 시인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므로 고통은 위대하다고 누가 말했을 때,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때는‘우리’라는 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나’는 또 하나의 타인이며, 세상에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카메라에도 안 잡히는 게 세월이며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게 인생길이니까."

[북데일리] 40여 년, 지독한 세월을 지독하게 견뎌낸 시인의 책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문예중앙.2014)는 천 시인의 고통과 고독으로 점철된 시간을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이 세상은 나 혼자서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라는 것을 체득한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1974년 한 해에 모두를 잃었다. 부모님은 그 해에 세상을 떠났고 아이도 남편도 길 밖의 사람들처럼 멀어져 갔다. 그땐 내가 하는 말도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가했고 세상의 모든 인연이 끊어진 자리에 내가 있었다. 모든 관계는 고통이었다. 자존심은 말없는 폭력에 짓밟혔고 사랑에 대한 믿음은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산산조각이 났다.(p18)

불행의 그림자는 동일한 빛깔로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일까. 글을 읽으며 절망과 절규가 동시에 가슴을 짓누른다. "바람은 몇 살이야"라고 묻던 아들을 잃은 저자의 슬픔과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아픈 기억으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산 뭉크의 삶엔 공통분모가 있다. 세상에 의지가지없는 신세라는 것이다.

혼자된 이의 삶의 무게를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뭉크는 "내가 놀고 있을 때에도 봄날의 햇살 속에서도 여름날의 햇빛 아래서도 죽음의 천사들이 늘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할 만큼 평생 불안 속에서 살았다. 시인 또한 자신은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였고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 새였다고 밝혔다.

누군간 그랬다.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고통과 고독의 시간은 그녀를 단련시켜 시인의 길로 안내했다. 그녀에게 시는 삶을 살게 한 끈이었다. 특히 그녀를 고통의 나락에서 건져 올린 건 생전에 인생의 사부였고 멘토였던 아버지였다.

(상략)여식 보아라 이르건대/ 금보다 시간이 더 갚진 것이니/ 세월을 허송하지 말거라/청춘 부재래靑春不再來라/ 여식 보아라 빌건대/ 제 갈 길 잘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아내의 길을 잘 가거라/ 여식 보아라 빌건대/네 한 몸이 누구보담 소중하니/아프지 말거라/ 여식 보아라 바라건대/ 제 정신 차리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니/ 절망하지 말거라/몽혼주사 맞은 날 몽롱해져/ 환상인지 환생인지 옛 아버지 여식 보아라, 여식 보아라 나를 깨운다/(여식 보아라)부분

아버지가 객지에 있는 과년한 딸에게 보낸 편지다. '여식 보아라'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사람이 갖춰야 할 예절이며 아버지로서의 노파심 어린 당부다. 자식에게 부모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괜찮다 괜찮다며 달래 주고 세상을 짚고 가게 하는 지팡이다. 자식 앞에서 엉킨 실타래를 풀던 어머니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일이 있고, 끊어지면 이을 수도 없는 일이 있음을 몸소 보여준 가르침은 그녀로 하여금 뒤편의 그늘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뒤편) 전문

​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만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고통을 잃어버렸을 때다. 뭉크, 고통스런 삶을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고독을 잘 담아낸 영혼의 화가가 되었고, 40여 년을 웃는 울음으로 고독했던 저자는 여류시인이 되었다. 삶이 강퍅하고 고통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그 속에 온전히 나를 던져볼 일이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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