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 그의 시는 얼음처럼 차고 단단
황학주, 그의 시는 얼음처럼 차고 단단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16 2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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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째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을 것이고, 몹시 쓰고 싶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얼마나 왔으며 더 갈 수 있을까. 아무 그림도 그려지지 않은데, 눈밭을 걷는 당신들이 보인다.”

[북데일리] 황학주 시인의 말이다. 열 번째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창비.2014)을 낸 시인은 올해 예순이다. 그는 시인들의 관문인 신춘문예, 각종 문예지, 신인상 추천도 거치지 않고 1987년 시집<사람>으로 문단에 우뚝 선 시인이다.  여기 50편의 시들은 겨울 이미지처럼 비장하고 명징하며 남다른 사랑으로  일군 시 밭을 선보인다.

나는 겨울을 춥게 배우지 못하고/겨울이 모일 때가지 기다리지도 못했지만/누가 있다 방금 자리를 뜨자마자/누가 있다 깍지 속에서 풀려나와 눈보라 들판 속으로 들어가는/사랑이란/ 매번 고드름이 달리려는 순간이나 녹으려는 순간을/ 훔치던 마음이었다/ 또한 당신의 눈부처와 마주보고 달려 있었다/이제 들음들음 나도 갈 테고 /언제가 빈집에선/일생 녹은 자국이 남긴 빛들만 열리고 닫힐 것이다/그때도 겨울은 더 있어서/누가 또 팽팽하게 매달려 올 것이다/자유를 춥게 배우며 /그 몸이 얼음 난간이 되어.(사랑할 때와 죽을 때) 전문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시는 겨울 이미지가 강하다. 이순을 맞은 시인에게 겨울은 어떤 의미일까. 시인의 겨울은 서슬이 퍼렇다.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날들의 몽롱함이 깃들어 있다. 겨울을 춥게 맞아야 혹독한 사랑도 껴안을 수 있다. 겨울을 춥게 견디지도 못하고 치열함도 없는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 쉽게 말한다. 다음 시를 보면 삶이 어떻게 상처를 끌어안는지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젖어가는 눈동자를/한 사람이 어떻게 떠올리는지 모르지만/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한다/그러나 과거를 잊지 말자/파탄이 몸을 준다면 받을 수 있겠니/숨 가쁘게 사랑한 적있으나 /사랑의 시는 써본 적 없고/사랑에 쫓겨 진눈깨비를 열고/얼음 결정 속으로 뛰어 내린 적 없으니/날마다 알뿌리처럼 둥글게 부푸는 사랑을 위해/지옥에 끌려간 적은 더욱 없지/예쁘기만 한 청첩이여/목이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좀 아프면 어때/아픔은 피투성이 우리가 두려울 텐데/순간마다 색스러워질 수 있는 것/ 그 모든 색 너머 투명한 얼음이 색색으로 빛나는, 색이 묻어나지 않는 색의 /기쁨인 그것들/우리는 대못 자국 같은 눈빛이/ 맑디맑게 갠 다음 무엇을 보는지/여간해선 짐작 못한다.(얼어붙은 시) 전문

숨 가쁜 사랑을 했지만 치열하게 삶에 몸 바친 적 없다. 차고 시린 겨울을 허망하게 지나쳤으니 목 떨어진 동백꽃의 슬픔과 얼음의 빛나는 색을 이해하지 못한다. 겨울을 겨울답게 살아내지 못한 부끄러움이  살구떨어지는 시간에 들게 했나보다.

이처럼 그의 시는 얼음처럼 차고 단단하다. 사랑하지 않고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들음들음’하는 시들이 시나브로 다가올 수 있었을까. 그는 쉬운 언어 속에 결코 쉽지 않은 삶의 그늘을 보여준다. 고통과 슬픔으로 빚어내는 보헤미안의 시에서 바람 냄새가 난다.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안다는 것일까.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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