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전, 시인이 쓰니 재미 두 배
동물사전, 시인이 쓰니 재미 두 배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1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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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감성사전 <꼬리 치는 당신>

 [북데일리] 세상 꽃들만을 삶속으로 끌어들여 노래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온갖 동물의 삶을 시처럼 에세이처럼 철학처럼 풀어낸 시인이 있다.
 
권혁웅 시인의 동물감성사전<꼬리치는 당신>(마음산책.2013)이 바로 그렇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초식 육식동물부터 공룡 도도새 모아처럼 세상에서 멸종된 동물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동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500여 종의 동물 얘기가 읽는내내 즐거움와 웃음을 선사한다.
 
 남은 꼬리가 꿈틀대는 동안 도마뱀은 달아나지. 잘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도마뱀은 생식도 성장도 하지 않는다. 그이가 당신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아파하지 마시길. 당신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동안 당신은 살아남은 거야.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p.36)
 
 100~200자로 제한한 글자 수 덕분인지 산문에서 시의 맛이 난다. 또한 동물을 소개하는 글마다 시인의 시적 자질이 엿보인다. 글은 간결하고 유머러스하다.
 
 녹색을 내는 색소가 없으면서도 박각시나방은 초록색 알을 나뭇잎에 낳는다. 천적이 발견할 수 없도록 위장 색을 입힌 것. 어떻게 초록색 알을 낳는 걸까? 애벌레 시절에 먹은 잎의 엽록소를 몸에 저장했다가 알에 주는 거다. 박각시나방, 마음이 참 예쁘다. 이것이 진짜 어머니 마음.(p.50)
 
 저자는 동물을 바라보는 방식은 한결같다. 꾸밈이 없어도 적나라하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동물들을 저자는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때로는 연민으로 때로는 혐오스러움까지도 솔직 담백하다.
 
 인간이 이를 두 번 가는 데 비해서 코끼리는 일생 동안 이를 여섯 번 간다. 마지막으로 난 이가 닳아 없어지면 굶어 죽는다. 보통 50년 넘게 살지만 임플란트 코끼리였다면 수명이 훨씬 길었겠지. 거대한 맷돌들을 여섯 번이나 쓰고서도 더 갈아야 할 게 남았다니 코끼리의 삶도 참 퍽퍽하구나.(p.66)
 
 동물들의 감정과 세계를  누구보다도 잘 읽어내는 시인은 그동안 펴낸 시집과 신화책에서도 동물의 본능과 몸짓이 글쓰기에 자극이 되었고 사람의 삶을 은유하게 만들었다고 밝힌다.
 
 산란용 닭들은 조상보다 열 배나 많은 알을 낳도록 유전자가 조작되어 있어 뼈가 부러지기 쉽다. 달걀을 만드느라 칼슘을 다 썼기 때문. 너희들 키우느라 뼛골이 다 빠졌다고 한탄하던 부모님들 죄송해요. 우리가 부활절 달걀은 아니지만요. 그런데 부모님도 양계장에서 살아오신 건 아니잖아요?
 
 저자가 동물을 존중하는 방식은 사랑도 혐오도 모두 솔직하게 라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에게 존재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저자는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마주한다. 저자에겐 삶이 시와 산문 사이의 경계쯤 될까. 어쩌면 그런 새로운 형식이 저자로 하여금 마음을 동하게 동물사전을 묶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델리펭귄의 포식자들은 하늘에서 온다. 남극도둑갈매기들이 통통한 새끼를 채 가는데 부모가 막을 방법이 없다. 동그랗고 단춧구멍같이 생긴 눈으로 쳐다볼 뿐. 얼굴 근육이 없기 때문에 멀뚱. 뺏겨도 멀뚱, 슬퍼도 멀뚱, 눈물이라도 흘리면 좋을 텐데.(p.401)

 책은 호랑이, 토끼, 여우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은 물론이고 주머니고양이, 탁총새우, 폭탄먼지벌레 등 낯선 동물까지 펜과 붓으로 수채화가 그려져 있어 눈이 즐겁다. 동물에 관심있는 아이들에겐 동물백과사전으로 손색이 없으며 어른들에겐 철학과 문학책으로도 충분히 접근할 만하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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