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기찬의 30년 `마지막 골목길`
사진작가 김기찬의 30년 `마지막 골목길`
  • 북데일리
  • 승인 2005.09.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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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만 30년을 누비며 잊혀진 골목길 풍경을 담아 온 사진작가 김기찬씨가 향년 67세를 일기로 지난 8월 27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고인은 1988년 이후 ‘골목안 풍경’을 테마로 한 개인전을 여섯 차례 개최했으며, 같은 제목의 사진집 시리즈를 6집까지 출간했다. ‘역전 풍경’, ‘골목 안 풍경 30년’ 등의 사진선집이 있다.

그는 말기 위암선고를 받고 반년동안 호스피스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 와중에 지난 7월 그의 유고집이 된 ‘그 골목의 품고 있는 것들’(2005. 샘터사)을 펴내는 투혼을 발휘했다.

‘골목길’ 하면 김기찬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의 11번째 골목길 사진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그 골목의 품고 있는 것들’은 흑백사진으로만 알려져 있던 그가 최초로 공개하는 컬러 사진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한 고(故)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처럼, 그는 사라져버린 골목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지막으로 생기를 불어넣고 떠난 것이다.

메트로폴리스로 변한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향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고향이 점점 더 나로부터 떠나고 있다는 느낌은 무척 괴로운 것이었다”며 “그때마다 느끼는 자괴감과 아쉬움이 골목을 누비는 내 발걸음과 셔터를 누르는 내 손을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다”고 ‘골목’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를 책을 통해 밝혔다.

그가 들여다본 골목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언니, 동생처럼 가족이 있다. 그 좁디좁은 골목 안, 벽과 담장 사이로 꽃을 가꾸고 짐승을 키우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기쁨과 슬픔이 겹쳐있고 적막과 그늘이 뭉개져 있다. 삶의 애잔한 풍경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마지막까지 가장 가까이서 책 작업을 한 소설가 김도언씨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고인을 회고했다.

“자분자분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사진집을 펼쳐 보이시던 선생님, 스타벅스에서 코코아를 마시던 선생님, 자택에서 포도송이를 손수 내놓으시던 선생님,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에 핏기 없는 얼굴로 누워 자원봉사자들의 안마를 받고 있던 선생님. 이 모든 모습 속에서 선생님은 한결같이 정겨웠다.”

또 그는 “선생님이 렌즈에 담아놓은 골목 안 풍경은 따뜻하고 한없이 애틋했다”며 김기찬 작가의 골목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장엄한 용서의 세계, 화엄의 세계를 보았다”고 전했다.

‘그 골목의 품고 있는 것들’에 실린 골목 안 풍경 사진 150컷에는 황인숙 시인의 섬세한 글이 ‘골목과 사람’의 모습을 더욱 따스하게 녹여내고 있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김기찬 전시회`를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고집스럽게 골목 안 풍경만을 프레임에 담아온 고인의 골목길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고(故) 김기찬 사진작가가 남긴 ‘그 골목의 품고 있는 것들’ 표지와 사진들, 샘터사 제공)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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