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나무의 까치발을 눈치채고...
바람은 나무의 까치발을 눈치채고...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10 0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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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숙 시인의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그녀는 바람을 키운다.  바람의 어미다. 달큼한 젖내 대신  바람 냄새가 난다. 시시로 삶을 회오리쳐 주름지워도 젖을 물릴 때마다 한쪽 가슴께가 씀벅거리는 것은  그녀에겐 바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북데일리] 습하고 무더운 여름, 자연바람이 그립다.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문학의전당.2014) 는 내게  바람을 보내줬다.  나무 그늘과 어울리는 시집이다. 시인은 독특한 사유와 부드러운 감성으로 행간마다  바람을 숨겨 놓았다.  재바른 눈길마다 수런거림이 심상치 않다.
   
 숲에서 바람의 길을 찾는다/그 안쪽으로 들어서자/바람에 찍힌 새의 발자국과/잎들이 내는 휘파람으로 온통, 수런하다/나무가 물길을 여는 것도/태양의 그림자가 숲의 바깥으로 향하는 것도/나무에 난 푸른 상처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숲이 길을 내기 위해 오랜 시간 직립을 꿈꾸었듯 바람도 직립을 향해 숲으로 든 것일까/직립이란 때론 위험한 거처다/허공의 고요를 넘겨다보며 삐걱거리기도 하고/때론 푸른 무게를 읽어/제 안의 힘을 바람에 맡길 지혜도 필요하다/그러나 바람은 복면을 쓴 채 숲을 공략할 것이고/ 간혹 상한 손길이 직립의 물길을/ 가로채기도 하겠지만/ 휴식을 반납한 숲은 지금 성업 중이다/ 풀꽃들의 경전이 태양인 것처럼/ 나무의 경전이 바람임을 숲에 이르러 읽는다. (바람의 경전) 전문

 숲에서 바람의 행적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새의 발자국, 잎들의 수런거림, 그림자의 방향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숲에 들어 바람의 뒤를 좇는다. 숲이 길을 내고 나무들의 직립이 고통을 동반한 삐걱거림을 감지한다. 숲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시인은 바람에 의한 담금질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게다. 바람의 담금질은 매정하지만 인간에게도  예외는 없다. ​
 
​ 남자를 올려다 본다/공중을 몇 바퀴 돌아 줄 위에 앉는다/팽팽하던 공중이 출렁였다 제자리로 돌아오고/접혔던 부채가 장구소리에 펼쳐진다/사내의 붉은 잇몸이 바람을 가른다/살기 위해 이 짓을 하지요 사타구니엔 불이 납니다/사내의 목 쉰 소리에/움찔, 내 느슨하던 가슴의 어느 부위에도 긴장의 줄이/팽팽하게 당겨진다/외줄 아래 관중을 향해 던지는 몇 마디 재담을 새가 물어간다/결코 겸손하지 않은 소리다/뽀얀 분장 위 툭 불거진 광대뼈/중심이 흔들릴 듯 사뿐 날아오르는 그는/절망과 절정을 공중 위에 부렸다//되새김질처럼 맴도는 사내의 말이 내 심장을 팽팽히 당긴다/한때 주목받는 인생을 꿈꾸던 털어내지 못한 미련이 순간 출렁인다/몸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거친 반항들/움켜진 손 안에 땀이 흥건하다/공연장을 빠져나온 태양이 구름에 가려질 쯤/길섶 패랭이 한 송이/내 안에 머무는 외줄 타던 환영을 보았는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외줄 타는 남자) 전문

 시인은 안다. 외줄 타는 남자가 두려워하는 게 자신을 지켜보는 수 많은 시선이 아니라 바람을 극복하고 외줄에 부려 놓은 제 삶을 또 살아내야 한다는 걸. 외줄 위에서 공중돌기를 해 내는 남자의 '붉은 잇몸을 바람이 가른다.' '나무의 가치발을 눈치 챈 건 바람'  시인의 빛나는 역설은 절망과 절정을 공중위에 부린 깨달음이며 출렁이는 시편마다 바람의 은유로 가득하다. 그래서 바람으로 키운 시는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일까. 아름다워서 위태로운 걸까.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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