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진 슬픔을 잠시 내리고
등에 진 슬픔을 잠시 내리고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0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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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도 시집<저녁 무렵의 회개>

"아직도 삶에서 헤매고 있지만, 시(詩)를 생각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시인의 말

[북데일리] <저녁 무렵의 회개>(문학의전당.2014) 는 2005년 '창조문예'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윤도 시인의 신간 시집이다. 이번 시집의 시편들은 개인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변화를 시에 담아 잔잔한 호흡으로 들려준다.

까만 대나무 곁/배롱나무 꽃이/잠시 슬퍼지는 것은/꽃이 핀 다음에 죽는다는/오죽의 일생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니라/화석이 되어버린/숯 같은 그리움과/소금기 옅어진 해풍에 흔들리는/오래전 사랑 탓이었으리.(오죽헌烏竹軒에서) 전문

세상에 존재하는 만상은 생과 멸을 거듭하며 영원할 수 없음을 안다. 시인은 오죽헌에 와서 배롱나무 꽃을 통해 숯처럼 까만 그리움과 오래된 사랑을 떠올린다. '순간' 에서 한 생을 포착하는 시의 촉은 여리지만 서정적이다.

​ 하늘을 찌른 바벨탑처럼/고집스런 굴뚝은/연기를 잃은지 오래고/군데군데 움푹 파인/진입로는/게으른 햇살로 한가하다/세월에 버티어/낡아진 담장 곁 멍이든 해바라기는/행복했던 지난 계절이 그리울 뿐이다/사택옆 놀이터엔/더는 기다려줄 소꿉동무는 없지만/아줌마가 되었을 소녀의 미소는/허물어진 두꺼비집 모래 위에 반짝이고/교대근무에 지친/늙은 발전원은/정년을 생각하며/사택옆 작은 텃밭으로 향한다/소박한 밥상을 채워줄/고추와 상추뿐 아니라/한 켠에 피어 있을/추억의 눈물 꽃을 가지러 간다.(낡은 발전소 풍경) 전문​

​ '낡은'은 지난 시간의 현재이다. 제 기능을 잃어버린 굴뚝은 한 생을 살아낸 흔적이며 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살아갈 현재이기도 하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늙은 발전원이 남은 정년을 떠올리며 텃밭을 향하는 일이다. 시인은 살아온 날을 통해 살아갈 날을 생각하며 푸성귀 밭으로 향하고 있지 않을까.

​ 깃털 젖은 작은 호반새/다잡아 놓쳐버린 개구리에 마음이 상할 즈음/굵은 비에 흔들린 주름진 고사목/둥지를 열어 반기고(장마) 전문

​ 시인은 먹이를 놓친 호반새를 안타까워한다. 주름진 고사목이 대신 둥지를 열어 반기다는 발상은 따듯하면서도 깔끔하다. 시편마다 맑고 순수한 심상이 담겨 있어 내삶과 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시는 대체로 절제되어 있고 호흡 또한 순하다. 그런만큼 결이 곱다. "누군가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는 시인의 소박한 소망처럼 이 시는 그렇다.<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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