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할매 '알콩달콩 스캔들'
스님과 할매 '알콩달콩 스캔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7.08 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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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이야기 <우짜든지 내캉 같이 살아요>

[북데일리] 경남 합천의 용지암 주지이자 승려 시인으로 유명한 도정스님의 첫 산문집 <우짜든지 내캉 살아요> (공감.2014)이다. 책은 팔순의 공양주 할매 보살과 젊은 주지스님의 특별하고도 애틋한 이야기다. 두 사람은 경상도 사투리로 서로에게 '시님'과 '할매' 로 부른다. 스님과 공양주 할매의 사소한 일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화제가 돼 책으로 펴냈다. 산사에서 일어나는 알콩달콩한 이야기와 고요한 산사의 풍경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저는 할매랑 둘이 살지만 여러 명의 여자와 한집에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자상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실 때는 어머니 같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앉은 채 주무시거나 몸이 아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주무실 때는 늙으신 할머니와 사는 것 같고, 이런저런 잔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 되면 기세등등한 마누라와 사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 조잘조잘 거리실 때는 딸을 키우는 것 같은 재미도 듭니다. 따뜻한 화목난로 옆에 앉아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며 김치를 찢어 내 입에 넣어줄 때는 영락없는 애인 사이가 됩니다. 할매도 내가 등 긁어줄 때는 영감 같고, 힘든 일을 척척 해줄 때는 든든한 아들 같고, 정겨운 애인 같고, 지독스레 말 안 듣는 말썽쟁이 손주 같을까요?(36쪽)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공양주 팔순 할매 보살과 젊은 스님의 특별하고 애틋한 인연은 도타운 정으로 살갑다. 장도 담그고, 면에 파마도 하러 가고, 마주 앉아 도라지 껍질도 까고 티격태격 하는 모습이 허물없어 보인다. '시님'과 '할매'의 정겨운 얘기는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이어진다.
 
 인터넷 신문에서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할매와 함께 거실에 앉아 밥을 먹자니 할매가 한 말씀 하십니다."시님, 옛말에 눈 봉사 며느리는 쫓아내도 벙어리 며느리는 안 쫓아낸다고 합디다." "왜요?" "눈 봉사는 밥만 축내고 일은 안 하니까 쫓아내는 게고, 벙어리는 불평도 없이 일을 잘하니까 안 쫓아내는 게지요." "그럼, 어떤 며느리가 벙어리처럼 말도 안 하고 봉사처럼 봐야 할 걸 못 보면 어쩝니까?" "누가 그걸 처음부터 며느리로 앉혔대?" "옳거니!”  (108쪽)
 
 산속 작은 암자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사람의 대화가 화창한 날의 하늘처럼 평화롭고 잔잔하다.  때로는 투덜거리는 아들과 어머니 같기도 하고 어느 땐 할머니와 머리 굵은 손자 같기도 해서 자연스레 미소가 벙근다.
 
 내게는 오늘 장작 쌓은 일이 어쩌면 이별을 쌓는 연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사는 것도 어쩌면 이별을 쌓는 일인 것만 같습니다. 장작이 앞으로 쏟아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뒷벽 공간을 두고 장작을 쌓듯이, 할매와의 이별의 예감은 내 가슴에 허전한 공간을 만듭니다. 이런 생각들이 찬바람을 몰고 와 가슴 저 밑바닥을 갈퀴처럼 훑고 지나갑니다.

 작년, 재작년, 그 이전에도 매년 나무를 하고 도끼질을 해서 처마 밑에 장작을 쌓아두었지만 오늘처럼 가지런하게 쌓지는 않았습니다. 비뚤어도 내가 갖다 때기 쉽도록 막 쌓아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장작을 차곡차곡 가지런하게 쌓아둡니다. 내가 아닌 할매나 그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갖다 때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할매가 갖다 때기에도 좋도록 잘게 쪼갰으니 나무 걱정은 무의식중에라도 덜고 싶었나 봅니다.(162쪽)
 
도정스님은 공부 때문에 할매와의 이별을 예감하고 장작을 쌓는다. 할매를 생각하는 애잔한 마음이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시인이자 스님인 저자는 기쁠 때나 슬플 때만 가슴에 눈물이 차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잔잔히 또 벅차게 차오르기도 한다고 한다. 두 사람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읽는 재미를 덤으로 준다. 책은 이기심과 시기심으로 인연을 가볍게 여기는 우리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깨닫게 한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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