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이웃은 눈꺼플 안에서 산다
가족과 이웃은 눈꺼플 안에서 산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6.17 2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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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의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북데일리] 문학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권 혁웅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창비.2014)가 나왔다. 이번 시집은 소박하고 누추한 서민들이 주인공이다. 시인은 평범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만의 풍경을 담아낸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먈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근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 한 혹은 편안함/ 그는 무슨 맛이었을까//(중략//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입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 있다//(중략)//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봄밤')부분
 
미당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시는 자기 집인 양 전봇대에 윗옷을 걸어두고 벤치에 잠든 취객을 잔잔하게 그린다.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그를 마중 나왔다"와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이불처럼 그를 덮어준다"처럼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늘 주변부를 바라본다. 
 
"얼굴을 썬캡과 마스크로 무장 한 채/ 구십도 각도로 팔을 뻗으면 다가오는 아낙들을 보면/ 인생이 무장강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계적응훈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한 지 몇 년인데, 지갑은 집에 두고 왔는데/ 우물쭈물 하는 사이 윽박지르듯 지나쳐 간다/ 철봉 옆에는 허공을 걷는 사내들과/ 앉아서 제 몸을 들어 올리는 사내들이 있다 몇 갑자/ 내공을 들쳐 메고 무협지 밖으로 걸어 나온 자들이다/ 애먼 나무둥치에 몸을 비비는 저편 부부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을 닮았다/ 영역 표시 해놓은 거다/ 뭇입이 지나간 참이다."('도봉근린공원') 부분
 
시인은 대수롭잖은 공원속 사람들을 대수롭게 시 속으로 그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는 개개인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족이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한 그들한테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인을 본다.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은 그의 입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하다. 웃음이 나면서도 뭔지 모를 묘한 지근거림이 남는다.

 "누가 이 양떼를 연옥 불에 던져 넣었나/ 수건을 둘둘 말아 머리에 인 어린양과/ 불가마 속에서도 코를 고는 늙은 양들로 여기는 만원이다/ 올 가을에는 기어코 성지순례를 가겠다고/ 삼년 째 돈을 붓는 아마곗돈 회원들/ 종말을 팥빙수와 바꾸고 나자 어린아이 머리통 같은 구운 계란이 굴러온다/ 천국에서도 남녀칠세는 부동석이어서/ 파란 수건은 왼쪽 빨간 수건은 오른쪽이다//(중략// 미역국처럼 몸을 푼 이들, 조물조물 몸을 빤 이들, 배를 두드리며 제자리에 뛰며/ 냉온을, 말하자면 겨울과 여름을 교대로 겪는 이들로 여기는 만원이다."('불가마에서 두 시간)부분

 시편마다 등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마징가의 계보<마징가계보학>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시편에서 시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울의 가난한 변두리에서 절망스럽고 비참한 삶을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낸 시의 기억들은 여전히 힘이 세다.  

​ "지금 당신은 뼈 없는 닭갈비처럼 마음이 비벼져서 불판위에서 익고 있지/ 나는 당신에게 슬픔도 때로는 달콤하다고 말했지/ 당신이 생각한 그이는/ 이미 오이냉국처럼 마음이 식었다고 일러 주었지//(중략)//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앞치마를 두른 채 조금 튄, 당신의 슬픔을 받아내는 일/ 당신은 없는 그이를 생각하고/ 그렇다면 우리의 삼각관계는 떡, 소시지, 양배추, 쫄면으로 치장한다고 해도/ 그냥 먹고 남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당신 앞에서 나는 물먹은 사람이 되었지/ 그것도 쎌프써비스였지"('춘천 닭갈비집에서')부분

 시 전편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부노래교실> , <김밥천국에서>,  <조개구이집에서>등 시편에서 보여주는 그들은 시인의 다른 모습이다.  삶의 비애를 유머로 풀어내는 그의 능력은 유행가 가사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의  말 중  '가족과 이웃이 내 눈꺼풀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산‘ 이유를 들어보자.<장맹순 시민기자>

 "그의 시에 달려있는 넓은 오지랖은 연민이라는 도덕적 자질과 더 관련이 깊어 보인다. 그는 요새 자꾸 마음이 아파서 세상에 간섭한다." -신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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