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따라 걷는 즐거움
문장을 따라 걷는 즐거움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6.15 0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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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그 안에 담긴 특별한 철학

 

[북데일리] [추천] ‘걷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길을 걸어왔는지, 어느 산책길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지, 어떤 곶(岬)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얘기한다.’ (10쪽)

 돈을 주고 걷는 세상이다. 걷는다는 것 자체의 즐거움이 아닌 건강을 위해 걷는다. 그러므로 걷는 즐거움은 잊은 지 오래다. 바쁜 현대인은 자동차, 기차, 전철 등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한다. 오로지 두 발을 이용해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걷는 행위로 암을 극복했거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례를 접할 때 걷기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러니 유명한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걷기에 대해 소개하는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책세상. 2014)은 좀 어렵고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정말 산뜻하고 매력적이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걸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걸어가는 몸은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태곳적에 시작된 생명의 흐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두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짐승, 키 큰 나무들 사이의 순수한 힘, 한 번의 외침에 불과한 것이다.’ (17쪽)

 책은 오직 걷기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자와 작가들에게 걷기가 어떤 의미였는지 들려준다. 걷기와 철학의 조합을 생각하면 칸트와 간디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들이 왜 걷기를 고집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저자는 그 외에 니체, 랭보, 루소, 소로, 프루스트, 벤야민 등의 삶과 걷기의 관계를 설명한다.

 건강이 악화할 때까지 걷기를 고집하며 그 안에서 글의 주제를 찾은 니체,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으로 걷고 또 걷었던 랭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자신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걸었던 칸트, 투쟁을 위해 걸었던 간디를 통해 걷기에 담긴 힘과 정신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진실된 삶을 위해, 누군가는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걷는다.

 함께 걷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걷기다. 이곳이 아닌 그곳을 향해 나가면서 마주하는 풍경들은 예전의 그것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멈췄을 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걷기는 최초의 여행 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매혹적인 이유는 바깥, 느림, 고독, 침묵, 영원, 순례, 공원, 산책 같은 키워드로 만나는 부분이다.

 ‘산책을 한다는 것이 갑작스럽고 단순한 휴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치 걸음을 멈추는 것만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산책은 오히려 리듬이 달라지게 만든다. 즉, 억압받던 팔다리와 영혼의 능력을 해방시킨다. 산책을 한다는 것, 그것은 우선 억압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나의 여정과 나의 리듬, 나의 표상을 선택할 수 있다.’ (236쪽)

 걷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혹은 단순하게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이 책은 특별하고 귀하다. 문장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숲의 냄새와 바람의 온기를 느끼는 듯하다. 일상을 뒤로 한 낯선 곳으로의 걷기든 반복된 걷기는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걸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모든 이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물하는 책이다. 그러니 이제 랭보처럼 만나기 위해, 떠나기 위해, 나아가기 위해 걷는 건 어떨까?

 ‘자, 길을 떠나자! 난 그저 걸어다니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81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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