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눈물은 얼지 않았다
아버지 눈물은 얼지 않았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6.0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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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순 시인의 <뿔 없는 그림자의 슬픔>

"서릿발 갈앉은 보리밭에서/ 파란 싹 한 움큼 뜯었더니/ 겨우내 아버지 눈물은 얼지 않고 있었다."(아버지)전문
 
[북데일리]기억 속 고향은 늘 푸근하다. 정홍순 시인의 첫 번째 시집<뿔없는 그림자의 슬픔>(문학의전당.2014)이 그렇다. 시편마다 그려지는 교향의 풍경은 기억 속 고향과 다르면서도 같은 게 있다. 언제고 찾아가면 묵묵히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함이다.
 
 "당암리 들어가는 초입 팽나무/ 팽나무는 한 발이라도 길나서고 싶을 때마다/ 억센 마디 비틀어댔다/(중략) 조상 세업 지키느라/ 한술 밥이 고픈 줄도 모르던 사람들/ 출상 날이면 으레 먼 길 쉬게 한/ 눈물이 더 고픈 사람들은/ 부러진 가지 움돋던 뜻 헤아렸을까/ 그 길에 울던,/ 웃던 사람들/ 조실하고 떠난 반장네 아이들/ 신발공장 순난이 생각, 고운 자식들/(중략)/ 발끝 마검포 푸른 물/ 얼싸 하고 장단 맞춰 /사설 풀어 간 녹도록 목 놓아 흔들며 간다/ 서서 흔들다 마는 것들처럼, 팽나무처럼"('팽나무재')부분
 
 시인이 그려낸 고향풍경은 현재이면서 과거이다. 한 시대를 견뎌낸 풍경의 무늬 속에 슬픈 가족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마을에서 유년을 떠올리며 우수에 젖는다. 고향, 달리 표현하면 삶의 원천인 어머니가 아닐까
 
 "어머니 그 이름에는 그리움으로 성글게 한 뼈들의 아파함이 들었다/어머니 이름 속에서 뼈가 자라며 새겨진/까마득한 우리들 생의 부호가 있었던 것/고여 있는 나이테처럼/ 내가 알기 전 사람 또한 그 속에 고이 잠드는 것이 있었다."('어머니의 상사喪事')전문

 삶의 출발점이 고향인 것은​ 어머니로부터 생겨나와'까마득한 생의 부호가'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거처를 옮겨 살아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 그것 아닐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성엣날이 속은 논바닥에 돼지가 죽으며 따뜻한 오줌보 내 놓았다 검불 붙은​ 오줌보 차/ 오른 하늘이 말랑거렸고 말랑거리던 하늘은 이내 눈 쏟아 내렸다/ 막걸리 지게미 냄새 두르는 지짐 냄새 장작불은 며칠째 개코에 싸락눈 녹듯이 탔다/ 밤새 할아버지 이름태/ 우고 때 묻은 유품들 불속에 버려져 조그만 종지기와 잔/ 이 남았다 할아버지 공적일 것이다 가난 말고 빚보증 말/ 고 남긴 유일한 대물림이다/ 아버지는 분노의 눈물 흘리며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 쓰러트렸다 목도해 올린 육중한 몸 송판으로 갈라져 관이 짜졌을 때 아버지는 "아버지"하고 울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눈물로 울고 아버지 눈물로 울고 내 조상 할아버지로 울었다 눈물의 감전은 언제나/ 어머니였다 꽃상여 나가던 날 나를 붙잡고 떠밀던 사람들 그 속에서 어머니 만류로 울었다/ 오늘 그 기억 울컥 나는 것은 그대와 나 진정 슬픔이 와 우는 게 몇 번이나 될까 울음 꺼내고 슬픔 꺼내 눈물/ 속에 사는 찰나로 몇 날이나 어머니 마음으로 울었을까싶다/ 다시 차올리고 싶은 하늘 발끝에 닿았다 어머니가 또 울까 싶다"(눈물의 크로키)전문

 지금까지 시인이 고향의 따듯한 풍경을 그렸다면 이 시 속​에는 끈끈한 가족의 내력을 그려 놓았다. 겨울날 논바닥에서 차고 놀던 말랑말랑한 돼지 오줌보처럼 가족의 눈물은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게 한다. 시인이 시편마다 보여준 고향풍경의 무늬는 각박한 현실을 잠시 잊고 기억 속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게 한다.<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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