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 어머니의 '바느질 글쓰기'
김용택 시인 어머니의 '바느질 글쓰기'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5.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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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받아쓴 <나는 참 늦복 터졌다>

"바느절 글쓰기를 안했다면. 여름 내 진놈의 해를 어떻게 넘겼을지 모르것다. 민세 애비가 좋아하니 더 좋다.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 삼베이불 만들어서 민세 애비주고 잡다. 글쓰기를 하니까 하나 생각하면 또 생각나고 마음이 좋다."
 
[북데일리] 김용택 시인의 가족이 쓴 책<나는 참 늦복 터졌다>(푸른숲.2014)가 나왔다. 이 책은 시인의 어머니인 박덕성 할머니가 말한 것을 며느리인 이은영 씨가 받아 적었고 시인이 책으로 엮었다.
 
 시인의 어머니 박덕성 할머니는 올해 여든 일곱이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할머니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나이 들어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며느리인 이 은영 씨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에게 한복집에서 사온 천, 바늘과 색실을 담은 반짇고리를 드린다. 
 
 "어머니 조각보 만들어보시라고요."며칠 뒤 병원에 갔을 때 나는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조각보, 찻잔, 받침, 홑이불, 베갯잇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무늬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어머니 특유의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중략) 바느질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놀랍게도 어머니 눈빛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았다.(p.10)
 
 며느리 이은영씨는 어느날 딸이랑 문구점에 갔다가 공책과 색색깔의 사인펜과 색연필을 사서 병원에 가져간다.
 
 "어머니 이제 글쓰기 할 거예요. 아니면 그림을 그려 볼까요? 어머니가 못한다고 탈탈 털었다. 바느질만 하자고 했다. 그날은 그냥 왔다. 어머니가 제일 쓰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중략) 어머니가 살면서 제일 좋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라 했다."나는 용택이 선생 된 때가 젤로 좋았다. 됐냐?" 하셨다. "그거 쓸게요, 어머니."  '나는 용택이 선생 된 때가 젤로 좋았다.' 어머니 말을 내가 받아쓰고 어머니는 그걸 공책에 옮기셨다. 이 몇 글자를 쓰는데 30분도 더 걸렸다. 손에 힘이 없어서 글씨를 쓰는 어머니 손이 덜덜 떨렸다"(p.12)
 
 책에는 색색의 사인펜으로 삐뚤빼뚤 쓴 할머니 글씨와 며느리가 쓴 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들을 녹음한 다음 집에 와서, 다시 어머니 말씀 그대로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정리했다. 어머니 말씀은 시였다. 어머니 말씀은 다 노래였고, 판소리였고, 소설이었다. 예전에 들을 때는 몰랐었다. 가끔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새겨듣지 않았다.(중략) 그러나 글을 쓰니까 어머니 이야기가 새롭게 들렸다. 어머니 마음이, 삶이 내게 아픔과 기쁨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내가 어머니를 이해하는 건가 싶었다."(p.13)
 
 어머니가 몸이 아프면서 잃었던 자존감이 바느질과 글쓰기를 하면서 좋아지고, 독립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어머니가 대학원 나온 것 같다며 좋아한다. 며느리도 글쓰기를 하면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책은 육남매를 키우던 어머니의 얘기, 시어머니께 꾸중 듣고 서운했던 일, 등 고부간의 갈등도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애정이 쌓여가는 모습이 얘기의 중심이다. 고부간의 민낯 같은 이야기는 훈훈하다.
 
 책을 엮은 시인은 어머니에게 시를 받아 적었듯이 이 책은 농사꾼인 어머니의 책이라며 어머니의 일을 찾아준 아내와 일을 찾은 어머니가 고맙다고 전한다. 시인의 가족이 함께 쓴 이야기를 보면서 부모의 노후 문제,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효와 충이라는 사회적인 용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혈육이라는 징한 삶의 끈의 의미와 그 아름다운 윤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효심은 때로 일방적이고 의무와 책임이 더 강조되는 강압적인 권의주의적 용어로 둔갑하여 실상을 덮는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사이처럼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용어로 작용하면서 대등한 인격을 허물고 파괴하기 때문이다.(중략) 일상에서 사소한 갈등은 때로 직접적이다. 실상을 은폐하고 미화시키는 것은 죄악이다. 삶이 아름다울 때는 진실의 장면 앞에 동등하게 설때다."- 시인의 말.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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