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 ‘경이’라는 말의 경의
[책속 명문장] ‘경이’라는 말의 경의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5.27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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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산문집 <각설하고,> 중에서

[북데일리] 쉬운 글쓰기가 있을까? 어떤 글이든 저마다의 노고가 담겼을 터. 그럼에도 읽는 이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글이다. 어떻게 쓰는 글이 그럴까? 진솔함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시인 김민정의 산문집 <각설하고,>(한겨레출판사. 2013)속 이런 글이 그렇다. 일상의 기록 속에서 경이를 만날 수 있다. 

‘아침에 화단에 나갔다가 보랏빛 부레옥잠을 꽃 위에 사마귀가 앉아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저 사마귀는 어디서 나서 어떻게 예까지 왔을까, 아슬아슬 매달려 뭔가 제 살 궁리로 바쁜 사마귀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누가 물으면 꼭 경이라고 답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점심에 밥을 먹으로 갔다가 샐러드 김밥을 한 줄 시켰는데 잘린 김밥의 다면이 화려하게 핀 꽃처럼 색색이었습니다. 재료 하나하나가 어찌나 서로를 꼭 껴안고 있던지 솜씨의 매무새를 누가 물으면 경이라고 답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저녁에 산책을 한답시고 동네한 바퀴를 도는데 이 집 저 집 아이들이 타고 놀았을 네발자전거들이 한데 모여 있었습니다. 어떤 자전거는 곰돌이 푸가, 어떤 자전거는 뽀롱뽀롱 뽀로로가, 어떤 자전거는 헬로 코코몽이 캐릭터를 뽐내며 주인 행세였는데요, 이처럼 다채로운 아이들의 취향에 대해 누가 물으면 꼭 경이라고 답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놀랍고 신기한 마음을 일컬어 경이라고 할진대, 근래 우린 어떤 일에 놀라고 어떤 일에 신기함을 느겼던가요. 내 집 네 집 경이 없는 집은 없답니다. 불러들 보고 찾아들 보세요, 그 경이!’ (182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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