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시인, 사유를 부르는 여백의 확장
김경주시인, 사유를 부르는 여백의 확장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5.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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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시인의 <수증기와 고래>

 

[북데일리]실험적 시 쓰기로 주목을 받아온 김 경주의 네 번째 시집<수증기와 고래>(문학과지성사.2014)이 나왔다. 지금까지 써온 시집마다 김 경주의 직관은 상식의 논리를 무너뜨려 시집마다 새로운 시도를 도모해 왔다. 이번 시집은 초기 산문시에 비해 시가 간결해졌다. 넓어진 공간의 여백은 무수한 사유를 요구한다.

"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 새 떼의 종아리에 능선이 걸려 있다/ 새 떼의 종아리에 찔레꽃이 피어 있다/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구름은 살 냄새를 흘린다/ 그것도 지나가는 새 떼의 일라고 믿으니/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새떼를 쓸다)전문

시집의 첫 번째 시다. 시는 일상 언어로 목소리를 낸다. 그의 고유한 음성에서 활달함이 느껴진다. 새떼, 종아리, 구름, 살, 날고, 피고, 통과하고, 쓸다, 피고, 은유가 시 전편을 통과하며 서정적인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행간 읽기의 보폭을 벌여 놓는다. 그것은 새떼의 일에 있지 않고 세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에 무게를 둔다.

"무대 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입김이다/ 그는 모든 장소에 흘러 다닌다/ 그는 어떤 배역속에서건 자주 사라진다/ 일찍이 그것을 예감했지만/ 한 발이 없는 고양이의 비밀처럼//(중략)// 입김은 자신이/ 그리 오래 살지 않을 것이라며/ 무리속에서 헤매다가/ 아무도 모르게 실종되곤 했다/ 사람들은 생몰을 지우면 /쉽게 평등해진다고 믿는다/ 입김은 문장을 짓고/ 그곳을 조용히 흘러 나왔다"( 시인의 피) 부분

시의 첫 문장 '입김'은 (새떼를 쓸다)의 '구름' 과 같다. 존재하면서 사라지고 비워내면 다시 채워지는 세계다. 끊임없는 시인의 삶속 언어와 언어속 삶 사이에서 독자는 관심의 시야를 넓힐 수 밖에 없다. 해독이 쉽지 읺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구름의 수명을 닮은 문장/ 구름을 두근거리게 하는 단어/ 단어의 수명을/ 세어 보는 아침/ 태양의 고요한 돌가루들/ 내 수명을 닮은 눈물은/사람이라 부르고 싶었다/ 그런 물방울은/ 사슴처럼 숨어 지내야 한다/ 저녁은/ 물방울이 지상의/ 가장 쓸쓸한/ 부력이 되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슬픔도/ 이동시키는 구름/ 물방울이 밀려와."(고적운高積雲)부분

그의 시는 잡힐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결말이 없다. 그것은 구름 닮은 문장처럼 설렘을 주다가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해 막막하게 만든다. '물방울'도 '입김'처럼 존재하지 공중을 부유하는 몸짓은 쓸쓸한 일이고 시인이 뭉쳐놓은 불투명한 언어의 뭉치들은 어쩌면 삶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싶게 만든다.

"언제부턴가 신문지는 꽃잎이나/ 말리는 것으로 사용했는데/ 오래된 신문을 모아 햇볕에 놓아두면 습기도 날려 버리고 소란도 옮겨놓고/ 활자처럼 구절초나 산국이나 쑥부쟁이처럼/ 향기도 기슭도 버리고/ 사나운 시절을 견딜 것 같아 모아 두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기사는 시집은 쌉니다 그냥 눈물이 나/ 나, 그냥"(그냥 눈물이 나)부분

신문지는 활자들의 집이다. 실재하면서 삶속 얘기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구절초나 산국이 향기를 버리면 종내는 신문지만 남게 된다. 지면 속 활자는 시인의 자취다. 그로 인해 시인은 사나운 한 시절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51편이 수록된 김 경주의 시는 일상 언어지만 결코 일상적이지 않는 말들이다. 모호한 말들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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