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 묘 앞에 배롱나무 심은 뜻
성삼문 묘 앞에 배롱나무 심은 뜻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5.2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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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생태학자 강 판권의 <선비가 사랑한 나무>

[북데일리] 나무 생태학자 강판권의 책 나무와 성리학 이야기 <선비가 사랑한 나무>(한겨레출판.2014)가 나왔다. 나무와 인문학공부법을 제시한 학자답게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세상을 바꾼 나무>,<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등 지금까지 열네 권의 책을 펴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나무를 통해 조선 선비들의 삶에 다가간다. 나무처럼 살아간 조선 선비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성삼문이 사랑한 백일홍나무는 우리말로 배롱나무이다. 여섯 장의 꽃잎과 여섯 장의 꽃받침을 가지고 있다. 주름 잡힌 꽃의 모양은 붉은색을 한 층 돋보이게 해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중략) 여섯 개의 꽃잎이 진 뒤에는 황두 黃豆를 닮은 열매가 열린다. 열매가 익으면 여섯 개로 갈라진다. 배롱나무 여섯 장의 꽃잎, 여섯 개로 갈라지는 열매는 우연이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의 숫자와 같다. 후손들이 성삼문의 묘 앞에 배롱나무를 심은 것은 조상에 대한 붉은 마음의 표상이다.(p.31~p.32)
 
 저자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에서 성삼문의 일편단심을 읽어낸다. 주군에 대한 '충忠'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해 삶과 사람을 대하는 가장 바른 태로도 정의 내린다. 성삼문의 절개는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고 본다. 저자의 나무를 중심으로 한 독창적인 성리학의 이해는 이어진다.
 
 퇴계는 아들이 매실나무를 만지고 자세를 바로 하자 다시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운명의 순간을 직감했다. 그는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말했다. "아버지 뭐라고 하셨어요." (중략) 퇴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 칠십 평생 살다간 퇴계는 운명하면서 매실나무 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중략) 나무를 만나고서도 나무와 만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격물이 아니다. 격물은 인간이 어떤 의지도 없이 우연히 스쳐 지나가면서 만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격물은 만나는 물 자체에 대해 절실한 마음으로 다가가,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단계에서 완성된다."(p.54 , p.69)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매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다. 저자는 유난히 매화를 좋아했던 퇴계의 삶을 추적한다. 평생 매화를 곁에 두고 낙으로 삼았고, 귀양길에 미처 가져 오지 못한 매화 분을 배편으로 따로 전해 받을 정도로 매실나무 애호가였다. 퇴계는 매화와 시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가 직접 쓰고 만든 매화시첩(梅花詩帖)에 담겨 있다. 저자는 퇴계가 아들에게 매실나무를 만져보게 한 이유를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格物>을 들어 설명한다.

저자의 나무에 대한 이해는 고전에 대한 해석을 바로 잡기도 한다.
 
 "추사가 <논어> '자한' 편에서 읽은 구절은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제목 역시 이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든다는 것을 안다"로 풀이할 수 있다.(p.75)
 
 일부 번역자들은 이를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로 풀이해 왔다. 저자는 백(栢)은 잣나무가 아닌 측백나무라고 오역을 지적한다. 소나무와 측백나무의 가치를 새겨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변치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이 외에도 차 한 잔으로 자신을 다스린 정약용의 수신(修身)과 차나무, 대쪽같은 조선의 선비 송시열의 변치 않은 신념을 닮은 나무 주목, 주세붕이 울부짖는 바위에 새긴 한 글자 은행나무와 경, 율곡 이이를 지킨 밤나무와 예, 나무를 아끼고 나무를 통해 수양한 선비들의 이야기가 풍성하다. 삶의 지혜를 나무와 조선의 선비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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