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작가의 신작 소설
황선미 작가의 신작 소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5.13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담백한 문장, 소박한 내용

[북데일리] 어린이 책 스테디셀러 <나쁜 어린이표>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황선미. 그녀가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썼다.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사계절. 2014)는 암에 걸린 한 노인과 그 집의 뒤뜰에 모여드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65세 '강 대수' 노인은 건설회사 회장으로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부를 이룬 사람이다. 그는 매사가 정확하고 모든 일을 전문가에게 맡겨 완벽하게 처리하는 성격이다. 현재 그에게 유일한 골칫거리는 머릿속에서 자라고 있는 혹, 암 덩어리다. 그는 휴식을 위해 어린 시절 추억과 상처가 남아 있는 산동네로 온다.

"여기는 이름만 버찌마을이지 마지막 버찌나무 한 그루까지 밀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벌레가 초록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그렇게 됐다. 100번지 일대만 개발되지 않은 건 워낙 언덕배기인 데다 드넓은 야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야산자락의 오래된 빈집.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그 집의 주인이 고집불통이라서. 고집불통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아무도 집주인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다." (p.23)

동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은 삼십 년 전부터 바로 강 노인의 소유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살지 않았지만 ‘그 상태 그대로’ 관리되어 왔다. 강 노인은 이 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한다. 먹고 싶은 것 요리해 먹기, 악기 배워서 연주하기 등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실천에 옮기려는 강 노인.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게 또 다른 골칫거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새벽에 수탉 울음소리에 놀라 잠이 깨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고, 조그만 여자애가 뒤뜰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분명 자신의 집이고 자신의 허락 없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말이다. 그동안 버찌마을 사람들은 그의 집 뒤뜰을 통해 마을 뒷산을 오르내리고, 아이들은 뒤뜰에 닭을 키우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텃밭을 가꾸었던 것. 그는 불같이 화를 내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지만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간다. 그가 그렇게 냉혹한 사람이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의 아픈 상처와 기억.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 창문도 없는 창고 방에서 쥐처럼 살던 아이, 다른 아이들은 모두 드나들 수 있는 뒤뜰에 금지당한 아이. 뒤뜰에 오려면 공주에게 절하듯 고개를 숙이라던 주인집 딸. 그 애의 그네를 매 주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뒤 앓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잠자리에서 안아 주는 것밖에 할 수 없던 아버지였다. 그 모든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이가 깨어나고 말았다." (p.73∼p.74)

하지만 결국 그도 뒤뜰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철저하게 막았던 동네 아이들과 이웃들에게 다시 뒤뜰 출입을 허락하게 된다. 강 노인은 자신의 뒤뜰을 드나들던 어린 여자아이는 그가 어렸을 적 그에게 상처를 줬던 주인 집 딸 '송이'의 손녀이고, 그 송이가 바로 치매에 걸린 무단 경작자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대수야! 강대수!”

송이가 그를 불렀다. 손짓하며. 백발의 송이가 마치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그 모습이 하도 눈부시고 놀라워서 강 노인은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다가가 허리를 조금 굽히고 송이를 보았다. 기적처럼, 송이의 시간이 강 노인의 어린 시절을 지나가고 있나 보다. 어쩌면 다시 엇갈려 영원히 다른 곳으로 달려갈지도 모를 송이의 시간 기차.

지금은 생각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다만 이 순간을 영원처럼 붙잡는 수밖에.

“대수야, 우리 이제부터 놀자!”

송이가 그네에 앉으며 자기 옆자리를 탁탁 쳤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고 그녀 옆에 앉았다." (p.241∼p.242)

작가는 이 작품을 아버지의 빈집에서 아버지의 물건들을 보고 떠올린 이야기로 썼다고 한다. '담백한 문장에 소박하고 단순한 내용'임에도 읽는 내내 푸근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아무도 들이고 싶지 않은 자신 만의 뒤뜰을 개방해서 동네 사람들의 앞뜰이 되게 하는 강노인. 초반부를 읽으면서부터 결말이 예측이 되지만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다.  표지를 비롯해 책 속 사이사이에 따듯한 색감의 그림들을 함께 실어 동화책을 읽듯 한 장 한 장 여유있게 읽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지난 4월에 열린 '2014 런던도서전'에서 우리나라 ‘오늘의 작가’ 대표도서로 진열되기도 했다. <정미경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