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문 인수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인간의 말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싶다. 적어도 시에 머무르는 동안엔 그렇다. 토시 하나도 함부로 달지 않는 인색함이 오히려 우리를 사유의 길로 안내한다. 시인의 이번 시집 <달북>(문학의 전당.2014)은 살과 뼈를 '한 침묵에서 다른 침묵으로 가는 길' 위에 세워둔다.
"물새 발자국이 한 줄 잔설위에 찍혀 있다. 아침 햇살이 대고 언 종적을 따라 간다/여기다!/ 날개 핀 자리/ 상처가 좀/더 깊다."('강')전문
시인은 잔설위에 찍힌 물새 발자국을 보고 햇살을 시켜 따라가게 한 다음. 새 발자국이 끊긴 곳, 새가 날개 폈을 자리에서 상처의 깊이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의 따순 오지랖은 자연스레 은행나무에게로 향한다.
"은행나무 밑둥치마다 낙엽이 몰렸다/ 이 추위가 아니라면 어찌 너의 이름 알리/ 반음씩, 더,/ 다가간다/ 따신 곁이 참 많다."('곁들')전문
풍경 속 은행나무가 낯설지 않다. 은행나무 밑둥치에 몰린 낙엽을 보고 시인은 말없이 곁을 내어 준다. 어쩌면 시인도 추운 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곁불을 쬐지 않았을라나. 주변의 친숙한 사물들의 넉넉함이 깊은 울림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 풀잎 잎 그림자의 일획이 아, 음각이다/ 바람에 몸 문질러/ 제 어둠 새기는 거/ 하늘에/ 눈에 밟히다/ 저녁 붉은 것이다."('노을에 새기다')전문
시는 보고 그리되 말하지 않고 침묵위에 또 한 겹 침묵을 얹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풀잎그림자가 제 몸을 어둠에 새긴다. 그걸 지켜보는 시인은 눈에 밟힌다 하는데 해 지는 노을 속으로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적막한 소리가 아련한 걸 보면.
"죽은 지 칠 년 여/ 그 단칸방을 나왔다/ 겹겹 껴입은/ 복더위에/ 백골에/ 사무친 냉골, 그 노인/ 으,/ 떨며/ 나왔다."('막막')전문
죽은 지 칠년 만에 백골이 되어 발견된 노인의 말은 고아였을까. 불안한 침묵이었을까. 시인은 자기 세계를 만들지 못한 망자에게서 막막함을 느낀다. 만장도 없고 소리꾼도 없는 주검을 위해 시인은 환한 북소리로 떠나가는 망자의 혼을 달래주지 않을까.
"봐, 달은 어디에나 떠 기울여 널 봐.
그 마음 다 안다, 그건 그래, 그렇다 하는...... 귀엣말,
환한
북
소리,
지금 다시 널 낳는 중."
(달북)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