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달래주지 않은 울음
아무도 달래주지 않은 울음
  • 장맹순
  • 승인 2014.05.03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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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기 시인의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었을 때>

[북데일리] "땅바닥에/ 얇고 긴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림자를 입고/ 몸통을 이끌고 가는/ 꼬리를 가진 것들에 대한/ 연민이/끊어지지 않는다.“(‘지네’)

양해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었을 때> (문학의 전당. 2014) 에 있는 시다. 이번 시편들은 짧고 정갈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거울, 물통, 항아리, 달팽이, 황사, 주변의 하찮은 것들을 바라본다. 안쓰러우면서도 덥석 손을 잡아주지 않는 마음은 무엇일까.

"식당 앞에/ 뒤집힌 항아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항아리 안엔/ 그늘이 있고/ 그늘 안에는/ 아직/ 이 세상에 피지 않은/ 꽃들의 그림자가 들어있다.“(‘항아리‘)

뒤집힌 항아리는 비어 있으되 그늘로 차 있다. 시인은 그것을 아직 피지 않은 세상 꽃들의 그림자라고 한다. 더 이상 개입하지 않고 잠시도 풀지 않는 긴장감은 팽팽한 거문고 줄 같다. 오히려 한발 물러서는 걸 보니 시인의 침묵이 꽤 길어 지려나보다.

"함께 놀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바람이 이발소 간판을 마구 흔들었다/ 길 한복판에서/ 고무다라이가 뒤집히고 있다/ 저 흙먼지는 내 머릿속에도 있다/ 나는/ 아무도 달래주지 않은 울음을 운 적이 있다.“('황사')

​ 좀처럼 입을 뗄 것 같잖던 시인이 침묵을 깨고 비로소 풍경 속으로 들어온다. 사물들과는 여전히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처음 불안한 속내를 드러낸다. 아무도 달래주지 않은 울음은 끝끝내 타지 않는 거문고 줄이다. 살며시 손을 내미는 시인은 이 외에도 언청이, 노숙자, 재숙이, 등 약자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으려 노력한다. 복잡한 현실속 난해한 시들이 난무하는 요즘 말하지 않고 직관을 보여준 시편들은 시 읽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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