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인이며 극작가로 알려진 김경주의 말이다. 김 경주는 추천사 말미에 '시인 장석주를 독서와 글쓰기라는 투구와 배 한 척으로 일생을 살아온 혁명가로 소개한다. 책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어디에서 구할까> (서랍의 날씨.2014)는 그의 산문 중 가장 뛰어난 대목과 통찰력 있는 글들을 뽑아 새 제목을 붙여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그는 스스로 '문장 노동자'라 할 정도로 읽고 쓰는 일에 부지런한 생계형 전업 작가다. 30여 년 동안 70여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안성시립도서관에서 시창작과 소설 창작 강의를 하기도 했다. 시인은 경기도의 금강호가 바라다 보이는 '수졸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사물이나 개념을 통찰하여 빼어난 감각과 밀도 있는 문장으로 표현한 부분, 하이쿠를 그만의 방식으로 감상한 부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부분이다. 그 중 뛰어난 상상력과 빛나는 감성으로 읽고 답하는 하이쿠 한 편을 감상해 보자.
"달은 어둠 속에 하얀 가면을 쓰고 나타난 태양이다. 달의 철학이란 태양에 대한 고찰이고 명상이다. 달은 밤의 야경꾼이다.달은 어두운 골목길을 하나도 빠짐없이 비추고 돌아다닌다. 달의 반려 동물로 어울리는 것은 단연코 고양이다. 달밤에는 발정 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보들레르의 시집을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P.75)
하이쿠는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시다. 이 글은 소칸의 하이쿠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에 대한 아름다운 감상이다. 소칸의 시도 위트 있고 재미있지만 한 줄 하이쿠를 풀어내는 감성은 독자로 하여금 달밤의 정취에 빠져 들게 한다. 시인은 하이쿠를 외우며 궁핍하고 지난한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항상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라는 장력을 보여주는 시가 좋은 시라고 말하는 시인의 남다른 시각은 <내 시의 비밀> 에서도 돋보인다.
"도처에서 사자 새끼들이 사자 소리를 내며 운다. 나는 몽둥이를 들어 사자 소리를 내는 것들을 내리친다. 세상이 고요하다. 이게 고요 이후의 고요다. 나는 그 고요에 닿고자 한다. 고요에 닿을 수 없다면 나는 고요를 깨버릴 것이다. 여기저기서 쫑알거리는 고요들. 몸둥이를 들어 도처에서 고요라고 주장하는 것들의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내 시의 비밀'.P184)
시를 쓰기전 명상을 한다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의 말에 의하면 "어떤 시는 빠르게 쓰고, 어떤 시는 더디게 쓴다고 한다. 어떤 시는 30분 만에도 쓰지만, 몇 년이 지나도 마음에 들지 않은 시도 있으며 '눈썹'이라는 어휘로 시작할 때 시가 빨리 써진다. 시는 언어를 딛고 언어를 넘어 간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다. 이번 산문집은 문장들의 진수이기에 곁에 두고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끝으로 시인의 성찰이 돋보이는 시 한 편으로 갈무리 한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