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손잡이를 달면 부채
달에 손잡이를 달면 부채
  • 장맹순
  • 승인 2014.04.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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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산문집 <도마뱀은 꼬리에....>

 

"그의 책은 검은 시루 속에서 자라는 콩나물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발밑을 지나 도도하게 흘러온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힘이 있다. 침묵과 질량이 아름다운 산문이다.”

이 글은 시인이며 극작가로 알려진 김경주의 말이다. 김 경주는 추천사 말미에 '시인 장석주를 독서와 글쓰기라는 투구와 배 한 척으로 일생을 살아온 혁명가로 소개한다. 책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어디에서 구할까> (서랍의 날씨.2014)는 그의 산문 중 가장 뛰어난 대목과 통찰력 있는 글들을 뽑아 새 제목을 붙여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 그는 스스로 '문장 노동자'라 할 정도로 읽고 쓰는 일에 부지런한 생계형 전업 작가다. 30여 년 동안 70여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안성시립도서관에서 시창작과 소설 창작 강의를 하기도 했다. 시인은 경기도의 금강호가 바라다 보이는 '수졸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이 책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사물이나 개념을 통찰하여 빼어난 감각과 밀도 있는 문장으로 표현한 부분, 하이쿠를 그만의 방식으로 감상한 부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부분이다. 그 중 뛰어난 상상력과 빛나는 감성으로 읽고 답하는 하이쿠 한 편을 감상해 보자.

​ "달은 어둠 속에 하얀 가면을 쓰고 나타난 태양이다. 달의 철학이란 태양에 대한 고찰이고 명상이다. 달은 밤의 야경꾼이다.달은 어두운 골목길을 하나도 빠짐없이 비추고 돌아다닌다. 달의 반려 동물로 어울리는 것은 단연코 고양이다. 달밤에는 발정 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보들레르의 시집을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P.75)

​ 하이쿠는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시다. 이 글은 소칸의 하이쿠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에 대한 아름다운 감상이다. 소칸의 시도 위트 있고 재미있지만 한 줄 하이쿠를 풀어내는 감성은 독자로 하여금 달밤의 정취에 빠져 들게 한다. 시인은 하이쿠를 외우며 궁핍하고 지난한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항상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라는 장력을 보여주는 시가 좋은 시라고 말하는 시인의 남다른 시각은 <내 시의 비밀> 에서도 돋보인다.

"도처에서 사자 새끼들이 사자 소리를 내며 운다. 나는 몽둥이를 들어 사자 소리를 내는 것들을 내리친다. 세상이 고요하다. 이게 고요 이후의 고요다. 나는 그 고요에 닿고자 한다. 고요에 닿을 수 없다면 나는 고요를 깨버릴 것이다. 여기저기서 쫑알거리는 고요들. 몸둥이를 들어 도처에서 고요라고 주장하는 것들의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내 시의 비밀'.P184)

​시를 쓰기전 명상을 한다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의 말에 의하면 "어떤 시는 빠르게 쓰고, 어떤 시는 더디게 쓴다고 한다. 어떤 시는 30분 만에도 쓰지만, 몇 년이 지나도 마음에 들지 않은 시도 있으며 '눈썹'이라는 어휘로 시작할 때 시가 빨리 써진다. 시는 언어를 딛고 언어를 넘어 간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다. 이번 산문집은 문장들의 진수이기에 곁에 두고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끝으로 시인의 성찰이 돋보이는 시 한 편으로 갈무리 한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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