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뜨거운 심장이 내는 땀방울
시는 뜨거운 심장이 내는 땀방울
  • 장맹순
  • 승인 2014.04.24 16: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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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 시인의 詩詩한<불량아들>

[북데일리] 2012년 <문학광장>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한 이 완근 시인의 시집 <불량아들>. 귤빛 표지처럼 따뜻하다. 언덕을 넘어가는 바람이 납작 엎드려 핀 들꽃에게 인사를 건네듯 시의 품이 넉넉하다. 대문에 걸린 첫 시를 보자.

지하철 안/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한 분이 꾸부정하게 일어나/ 둘둘 만 신문지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 어깨를 툭, 건드린다/ 겸연쩍은 할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할아버지 뒤를 바짝 따라 내리는/ 정겨운 오후('정경情景') 전문

선하게 그려지는 두 노인의 모습은 보아하니 부부인가보다. 나이 들어가면 점점 얘 같아진다더니 둘둘 만 신문지로 할머니의 어깨를 건드려보는 할아버지와 미소로 반응하고 따라나서는 노부부의 모습이 <나기>속 소년 소녀 같다. 선함의 시작은 어디서 비롯될까.

나는 사기꾼이다/ 딸에게 마당이 있는 집도 마련해 주지 못했고/ 아내에게 달콤한 말도 못하고 있으며/ 어머니의 굽은 허리를 펴주지도 못하고 있다./ 못하는 게 어디 이것 뿐이랴/ 한 사람 가슴에 남을/ 시 한편 못 만들고 있으니/ 시인이란 이름의 사기꾼이 어니 아니랴/ 사기꾼이 사기 치니/ 사기충천인 닭 우는 새벽이다.( '사기꾼') 전문

시는 말하면서 다 말하지 않는 게 미덕이라지만 주머니를 까뒤집어 보이듯 제 속을 다 털어놓는 선량함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나보다. 현실 속 힘없는 시인은 자연스레 붙여진 아버지, 남편, 아들 자리에서 내려와 자칭 '사기꾼'이라고 고백한다. 세상에 시 다운 시 쓰지 못함을 사기꾼이라고 발설하는 시인을 만나면 "오메 반갑다야."하며 겁나게 고마워 할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책 몇 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책 주려고/ 쿠알라룸푸르 행 비행기 티켓도 같이 예약했다.('핑계')전문

제 가슴 한구석에 난 구멍은 돌보지 않으면서도 딸이 보고 싶어 몇 권의 책을 핑계 삼아 바로 공항 티켓을 예매하는 시인은 다정하다. 구멍 난 자리에 그리움 일면 시도 때도 없이 꽃 피어날까. 어쩌면 상처는 다정한 시인의"뜨거운 심장이 내는 땀방울"<눈물> 이 아닐까.

​ 시시한 세상에서 시는 시시하지 않으며 시시각각詩 詩 覺 覺 변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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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2014-04-29 11:14:50
장맹순 선생님,
제 시집에 관심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손없는 날 잡아서 막걸리 한잔했으면 저에겐 큰 기쁨이겠습니다.
좋은 시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