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오늘 일어난다. 마치 처음 일어나는 일처럼. 모든 과거가, 모든 미래가, 모든 가능한 일이, 오늘, 여기에서, 지금, 벌어진다. 그 무시무시한 엄습 앞에서 누가 떨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예감과 기억이 동의어가 된다.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기억마저 된다.’ (정한아의 ‘모든 일은 오늘 일어난다’ 중에서, 47쪽)
‘쓴다는 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 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완성은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높이까지 시와 함께 오르다,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박살은 갱생을 불러온다.’ (이은규의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중에서, 144쪽)
‘산 채로 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육체를 씻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다. 내 본디의 육체와 영혼을 두껍게 뒤덮고 오랫동안 살갗 행세를 해온 거짓됨과 무지와 환상의 껍데기를 뜯고 벗기는 것이다. 실상과 허상 사이에 엄연한 그 견딜 수 없는 불일치를 해부하고, 잠든 의식은 부검해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깊고 어두운 나무뿌리의 지하에서 나와, 마침내 내 육체와 영혼의 지평선에 떠오르는 경이로운 일출과 마주서는 것이다.’ (박지웅의 ‘오로지 시로써’ 중에서, 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