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日야구광들의 철학적 이야기
우아한 日야구광들의 철학적 이야기
  • 북데일리
  • 승인 2007.03.05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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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소설을 읽을 때, 전적으로 독해력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 있고, 감각, 즉 느낌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체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소설들은 플롯이 잘 짜여져 있고, 상세한 설명으로 독자들을 편안하게 자신이 그려낸 세계로 손잡아 이끌어주지요. 하지만, 감각이나 느낌을 중시하는 소설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몇 줄을 읽어도, 반을 읽어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읽는 데 걸리는 시간만도 상당하니까요.

물론, 이 둘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진 소설도 좋겠지만, 양끝으로 치우친 소설들을 읽는 것도 상당한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느낌을 필요로 할 때, 독자가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의 크기,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네요.

읽을 때, 감각, 즉 느낌을 필요로 하는 소설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류 중에 많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전통적 가치에 대항한 모더니즘의 취지를 살리면서, 형식에 있어서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을 큰 목적으로 합니다. 작가들은 모더니즘의 수용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살려가되 기존의 고루한 방식만큼은 더 이상 답습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거부의 의사를 소설을 통해 피력합니다.

고의로 파괴시킨 플롯과, 개연성의 부재,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갈등, 해체된 이미지의 조각들, 온갖 키치적 요소들, 왜곡되고 과장된 문장들만으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 포스트모더니즘류의 소설은 쓰레기 더미 안에서 쓸 만한 것들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듯, 새롭고 기발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미 여러분 앞에 소개해드린 책들로 미루어 짐작해보실 수 있겠지만, 고냥씨는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소설들을 읽긴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취향을 상당 부분 지닌 터라 10년 전에 큭큭거리며 읽었던 일본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웅진. 2005)가 퍽이나 입에 잘 들러붙었더란 말이지요.

이미 매니악한 취향의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소설, 절판되었을 때,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안달들이 났었던 바로 그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바람잡이같이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입니다. 믿어주세요)를 오늘 여러분 앞에 놓아 드립니다. 겐이치로의 또 다른 소설 <사요나라 갱들이여>(향연. 2004)와 더불어 다시 꺼내 읽는 그 느낌이, 10년 전의 감격스런 그 맛보다 깊어진 것 같아 그만,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건데요, 고냥씨는 포도주처럼 날로 숙성해가는 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뭐,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가 10년 만에 재출간 된 작품이라고 해도 그 내용은 변함없겠지요. 하지만, 앳되었던 그 시절 맛보았던 그 때와는 달리 다시 읽었을 때, 10년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머릿속에서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다보니, 더욱 깊어진 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맛이 느껴지는 것이 아, 고냥씨도 10년의 세월만큼 숙성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참 감격스러워 주책을 떨며 혼자 맥주 캔으로 축배를 들기도 했었답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야구에 관련된 소설입니다. 야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야구로 ‘모아지는’ 소설입니다. 오랫동안 야구에 관한 글을 스크랩하는 노인이나, 야구를 알기 위해 900편의 야구에 관한 시를 두 시간 이내에 쓰고, 100편의 포르노 비디오를 보는 강훈련을 견뎌내는 초등학교 1학년의 소년, 더 이상 쳐야할 공이 없어 칠 수 없다는 4할 타자 등이 등장합니다. 네, 대강만 얘기해도 와, 하시겠죠?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들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들 역시 범상치 않습니다.

소설 안의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삶의 모습들은 작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비슷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학생 운동에 가담했던 것으로 인해 체포와 구금 생활을 반복하였고, 10여 년 동안 노무자 생활을 했다는 그는 구치소에서 실어증을 앓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활치료의 차원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읽다보면 문체의 자유로움이 가장 먼저 다가올 테고, 겐이치로의 치열한 삶에 대한 고민과 글쓰기에 대한 자세 역시 느끼실 수 있어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새 진지하게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써야하는 건지 몰라서 마음대로 썼다는 박민규의 소설은 다카하시 겐이치로를 일정부분 닮아 있습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을 좋아하고, 또 박민규의 소설을 아끼는 저와 같은 사람이라면 대다수는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고냥씨는 개인적으로 박민규의 소설이 더 정서에 잘 맞고, 세련되게 잘 주무른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 훌륭한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출판사, 2003)이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를 한 번도 읽어 보지 않고 쓴 것이라고 작가가 얘기한다면 고냥씨는 아마 절대로 그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 겐이치로의 작품 중 <사요나라 갱들이여>(2004, 향연)를 여러분 앞에 소개해 올려 드리려고 했었는데, 이것 참, 양손에 먹음직한 떡을 들고 있자니, 어느 걸 먼저 먹을까, 고민이 팽팽하게 맞서 어떤 작품을 우선 놓아드려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먼저 소개드린 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이지만, <사요나라 갱들이여> 역시 빼놓을 수 없어 이렇게 덧붙여 소개를 드립니다. 비슷한 모양이지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와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색깔도 다르고, 맛도 아주 다르거든요.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처럼 상식의 틀을 깬 것은 비슷하지만, 거기에 시각적인 이미지를 좀 더 잘 활용하였고, 여러 가지 색깔의 구슬을 꿴 목걸이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고전과 현대의 여러 장르를 두루 꿰고 있는 소설입니다. 또한, 존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읽고 나서 책이라는 건물 전체에 강처럼 흐르고 있는 슬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이되는 바람에 마음이 많이 아팠었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느릿느릿 목으로 넘기는 따뜻한 커피향이 좋습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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