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온다. 정말 수재가 되려나? 하지만 받침 있는 글자가 나오자 일수는 더이상 100점을 받지 못한다. 학교에서 점점 일수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없다. 선생님의 질문에도 항상 ‘그런 것 같아요’ 란 대답만 할 뿐이다. 그러다 일수는 서예부에 들어간다. 자신의 글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 덕분에 일수의 글씨가 학교에 전시된다. 엄마는 일수를 서예학원에 보내지만 재능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일수는 뭐든 중간을 유지하는 아이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일수는 어른이 된 스물 다섯살에도 어머니를 도와 문구점 아저씨가 되었다. 그러다 일수가 초등학교에 쓴 서예 액자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초등학생을 대신한 가훈 대필이었다. 서예로 가훈을 써주는 가훈업자가 된 것이다. 가훈을 찾으러 온 초등학생이 일수의 가훈은 뭐냐고 물으면서 일수의 오래 전 고민이 되살아난다.
‘일수 씨는 거울 앞에 섰어요. 그리고 오래전 받았던 질문을 따라했어요.
“일수야, 넌 누구니?” “그런 거 말고, 넌 누구니?” “네 쓸모는 누가 정하지?”
다리가 저릴 때까지, 일수 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았어요. 국민, 시민, 예비군,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 가훈업자, 일석 반점 단골, 문구점 아저씨인 일수 씨는 분명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아닌 일수 씨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죠.’ 117쪽
동화는 아주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수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과정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일수(一秀)라는 이름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나를 찾아가는 일수의 모습은 어른들의 그것과 다르지 같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좋을 책이다. 더불어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 어른이 읽어도 좋을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