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혀끝의 남자를 보았다
나는 혀끝의 남자를 보았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1.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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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명문장] 백민석의 『혀끝의 남자』중에서

[북데일리] 어떤 글이든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첫 인상과 같은 의미다. 때문에 작가들은 첫 문장에 고민할 것이다. 10년 만에 돌아와 화제를 모으는 백민석의 <혀끝의 남자>(2013. 문학과지성사)에 도입은 다음과 같다. 인물에 대한 관찰만으로 이뤄진 도입, 그 남자의 인생은 어땠을까.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오는 글이다.

 ‘나는 혀끝의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머리에 불을 이고 혀끝을 걷고 있었다. 남자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혀에서 불꽃이 일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단내가 사방으로 넘쳐흘렀다. 남자의 등은 약간 굽었고 어깨도 조금 쳐져 있었다. 불이 목덜미까지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동요 없이 혀끝을 걷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고요 속에 내딛고 있었다. 남자는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의 뿌리가 이마까지 적시고 있었다. 표정은 모호했다. 남자가 나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쪽 눈매가 이쪽을 향해 있었지만 시선이 마주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남자는 내가 아는 어떤 인물과도 닮지 않았다. 내가 아는 어떤 인물도 남자처럼 불타는 머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머리에 불을 인 채 혀끝을 걷지 않았다. 나는 혀끝의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머리에 불을 붙이고 고요 속을 걷고 있었다.’ (9,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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