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최민식, 간첩신고 100번 당한 사연
사진작가 최민식, 간첩신고 100번 당한 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5.09.0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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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촬영해 왔다.”

사진작가 최민식은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의 굶주린 이가 남아 있다면 틀림없이 그를 찍고 있을 사람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굶주리고 고통 받는 마지막 한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그는 셔터를 누를 사람이다.

최민식은 인간의 평화와 빈곤의 추방을 끊임없이 이야기 해 온 작가다. 그는 세계 7개국에서 15회의 개인 초청전을 가지며 ‘카메라의 렘브란트’라는 격찬을 받아왔다.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17세에 평안남도 진남포의 미쯔비시 기능자 양성소에서 기능공으로 근무했던 그는 1955년 일본 유학 중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가족’을 보고 감동받아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100번의 간첩신고 당해가며 찍은 사진들이 바로 나의 인생”이라는 그는 “한 시대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라고 확신했다.

그는 지난 50여년 동안,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없이 사는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 분노와 외침을 찍어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삼청교육대 명단에 오르는 일도 빈번했다. 시장이나 역전에서 촬영을 하다 수상하게 여긴 이들이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독일에서 전시했던 사진이 이북으로 넘거져 정보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 권력자들에게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사진이 결코 달가울 리 없었다.

최민식의 인생유전과 사진 이야기를 담은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2004. 현문서가)에서 그는 “나의 카메라 워크는 절대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나 호기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통찰과 분노의 사회 고발”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나의 사진은 고난과 시련을 겪는 인간으로서의 아픔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며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인물의 고통에 직면하게 하였다. 이것은 비참하고 불쌍하다는 동정의 의미보다 인간이 누려야 할 삶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아픔이었다”고 고백했다.

먹고 사는 문제까지도 최민식의 예술혼을 억압했지만 그는 생명과 평화를 향한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작품 활동 과정에서 겪어온 모든 어려움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그렇게 찍어온 사진들이 곧 자신의 생명이며 인생이 된 것이다. 일흔여섯의 나이에도 ‘젊은 청년’ 소리를 듣는 최민식은 사람과 사진에 대한 열정을 여전히 뿜어내고 있다.

닳고 닳을수록 그 울림이 커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생명력을 전달하는 그의 사진을 오는 16일(금)까지 EBS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최민식 사진전’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작가의 평생 역작 50여점을 선보이는 이번 사진전은 제2회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EIDF2005)의 특별행사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사진 = 책 표지 현문서가, ‘EIDF2005’ 국제다큐사무국 제공)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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