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은 서로를 신뢰한다. 재산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명성을 중시한다. 현재의 가족은 물론 미래의 자손들까지 생각한다. 한마디로 특이한 존재다. 이것이 바로 가족기업이 오래 견디는 이유다.”
[북데일리] <세계 장수 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예지. 2007)의 저자 윌리엄 오하라가 한 말이다. 현재 브라이언트 대학 가족기업연구소 소장을 맡고있는 그는 "가족기업이야말로 21세기 경제활동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파해왔다.
주장을 입증하는 자료로 2002년 ‘패밀리 비즈니스 매거진’에 발표한 ‘세계 최고(最古) 100대 기업’이 있다. 국가의 부에 있어 장수기업들이 담당한 역할을 정리한 것이다.
오하라는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조사를 이어갔다. 4년여에 걸쳐 역사가 2백년이 넘은 기업이면 어디든 직접 탐방했다. 관련 자료를 섭렵하고, 학계.업계의 전문가들과 토론을 벌였다. <세계 장수 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에 실린 20개 기업은 이처럼 엄격한 과정을 통과한 알짜배기들.
책은 이들 기업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제시하며 “이 조건을 충족하며 장수하는 데는 가족기업이 단연 으뜸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공통점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 주위 환경에 대한 기업의 적응력이 크다.
▲ 직원들의 응집력이 높고 일체감이 강하다. 회사 대표는 기업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기업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 회사가 관용적이어서 실험적인 생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 엉뚱한 사람을 쉽게 수용한다.
▲ 의사결정이 수평적으로 분산되어 사업다각화가 쉽다.
▲ 재무관리에 보수적이며 빚지는 것을 싫어한다. 무엇이든 자기 자본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융통성이 크고 경쟁자를 이길 수 있는 대안을 쉽게 발견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기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부의 세습, 혈연위주의 인사제도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책에 실린 사례들은 확실히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효시료칸’(일본)은 중도(中道)를 통해 기업의 적응력을 높여왔다. 정치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 게 중도의 핵심이었다.
6백년을 이어온 포도주의 명가 ‘마르께지 안띠노리’(이탈리아)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과감히 후대에게 모든 것을 넘겼다. 각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사업을 분할해 물려줬다.
건설기업 ‘더트넬 앤 선즈’(영국)는 비용 절감으로 채무를 일절 만들지 않았다. 보수적인 경영을 통해 재정이 탄탄한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주력하던 모직물 생산이 사양길을 걷자 과감히 사업단지 임대업으로 업종을 변환한 ‘브루크 앤 선즈’(영국), 19세기 초부터 공들여 국축한 판매망의 덕을 후대까지 톡톡히 본 총기제조업체 ‘베레따’(이탈리아), 거의 사라져가던 전통적인 고급 포도종자와 제조법을 살려낸 ‘위겔 에 피스’(프랑스) 등 다양한 기업의 성공비결을 접할 수 있다.
이처럼 가족기업 중에 유명한 업체가 많지만 오랫동안 학계, 언론,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가족기업이 중요한 경제력의 일부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 저자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한 세계 상거래의 75~90%가 가족기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 ▲가족기업이야말로 대기업의 비인간적이고 관료적인 문화의 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그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서희선 기자 samecord@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