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이리나 레인의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중에서
[북데일리]글이란 참 대단하다. 상황 묘사만으로도 인물의 감정 상태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안나 카레니나의 부활이라 할 수 있는 이리나 레인의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2013. 예담)에서 그 놀라운 힘을 확인한다. 다음 글을 통해 우리는 주인공 안나가 얼마나 불안한지 짐작할 수 있다.
‘3월의 흐린 날은 모든 생명을 멈추게 만드는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비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 찌무룩한 하늘, 옅은 안개. 집 안으로 눈을 돌리면 소파 팔걸이에 늘어진 반쯤 뜬 목도리, 정리하지 않은 침대 위에 엎어놓은 페이퍼백. 물은 펄펄 끓고 아기는 빽빽 운다. 자동차 경보음처럼 어디서 올라가고 어디서 내려오는지 빤한 울음이다. 그러다 적막. 시계가 째깍거리고, 폴란드 말로 달래는 나직한 목소리, 고동치는 두통. 비. 구름을 쥐어짠 듯이 쏟아지는 비. 적막.’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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