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모래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7.1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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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명문장]<모래의 여자>중에서

[북데일리] 작가 아베 코보는 ‘인간 소외, 정체성 상실 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작품들을 남겼으며, 현대 일본 문학의 국제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의 소설 <모래의 여자>(민음사. 2001)는 학교 선생인 한 남자가 곤충 채집을 위해 사구로 여행을 떠났다가 모래 구덩이에 갇히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 책에 따르면 모래의 크기는 직경 1/16mm~2mm 정도다. 에노시마 해변에 있는 모래든 고비 사막에 있는 모래든, 그 알갱이의 크기는 거의 다르지 않다. 대부분 직경 1/8mm 라고 한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의 특성에 대한 묘사가 무척 입체적이다.

“지상에 바람과 흐름이 있는 이상 모래땅의 형성은 불가피한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르고 바다가 넘실거리는 한, 모래는 토양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어다닐 것이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일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예컨대 그의 길앞잡이속처럼…….“ (p19~p20)

참고로, ‘길앞잡이속’은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막 곤충이다.

“그놈은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날아 도망쳐 놓고는 마치 잡아보라는 듯 빙 돌아와 기다린다. (중략) 어떤 설에 의하면, 그렇게 기묘하게 나는 까닭은 노리고 있는 작은 동물을 집에서 꾀어내기 위한 함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쥐나 도마뱀 등이 그 꾐에 빠져 사막에서 길을 잃고 기아와 피로로 쓰러지기를 기다려 그 사체를 먹이로 삼는다. 연서(戀書) 배달꾼이란 사뭇 우아한 이름에 겉모습은 친절한 남자 같지만 실은 날카로운 턱을 가진 데다가 서로를 잡아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성질이 사납다는 것이다.“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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