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 조경란의 <불안서 안경원>중에서
[북데일리] 비오는 풍경은 모든 풍경이 그렇듯 바라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비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고 같은 비라 해도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부여한다. 조경란은 소설 <불안서 안경원>을 통해 안경을 파는 가게 안에서 폭우를 묘사한다.
‘거인들의 오줌발 같은 굵은 빗물이 유리창 밖에서 수많은 빗금을 휘긋고 있었다. 빗줄기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무화시켜버리겠다는 듯 거칠고 난폭한 태도로 가로수들과 자동차들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비상라이트를 켠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우산이 뒤집어지고 가로수 밑의 자전거들은 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마력을 가진 피리소리 같은 비바람의 날카로운 비음(費音)이 유리창 전면을 깨부수고 귓속으로 달겨드는 것 같았다. 보도블럭이 뒤집어지고 상가의 모든 간판들이 떨어져내릴 것 같은 굉장한 폭우였다. 어젯밤 악착같이 생사를 걸고 유리에 들러붙던 날벌레들의 거대한 점묘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실내 가득 비릿한 비 내음이 스며들었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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