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명문장] 청각과 후각으로 묘사한 명장면
[글쓰기 명문장] 청각과 후각으로 묘사한 명장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6.0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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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명문장] 이언 매큐언의 <여름의 마지막 날>중에서

[북데일리] 우리는 감각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떤 감정이 시작된다. 하나의 사물을 마주할 때 시각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때로 소리나 냄새로 새겨진 기억은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다. 이언 매큐언의 <여름의 마지막 날>은 청각과 후각으로 하나의 장면을 황홀하게 묘사한다.

 ‘나는 열두 살. 반 벌거숭이로 뒤뜰에 엎드려 일광욕중이다. 이 때 처음으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난 모른다. 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감는다. 공연한 일로 웃는 듯 짧고 불안한, 소녀의, 젊은 여자의 웃음소리. 한 시간 전 깎은 잔디에 머리를 반쯤 묻고 있자니 잔디 아래서 차가운 흙 기운이 올라온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미풍과 등 뒤에서 타오르는 늦은 오후의 뜨거운 태양, 그리고 찌르는 듯한 그 웃음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하나인 것처럼, 마치 하나의 맛인 것처럼 느껴진다.

웃음소리가 그치고 잔잔한 바람이 만화책을 넘기는 소리만 커져갈 즈음, 집 어디선가 앨리스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원은 온통 여름다운 무거움으로 차 있다. 잔디를 밝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몸을 일으키자 현기증이 일며 모든 색채가 흩어진다.’ (62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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