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사랑은 모든 작가가 쓰고 싶은 주제다. 소설이든, 시든, 산문이든 사랑을 노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말이다. <떨림>(2007. 랜덤하우스코리아)에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외 24명의 작가들이 말하는 사랑이 있다. 다음은 시인 문정희가 쓴 <사랑은 언제나 유치하고 서툴게 시작되었다>의 일부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과 두려움이 전해진다. 첫사랑이라는 아련한 떨림!
‘사랑은 신호 없이 온다. 발자국 소리 하나, 조그만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사랑은 와서 순식간에 우리들을 쾌락과 고통, 혼란과 후회의 불 속으로 집어던져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둘을 만들지 못한다. 오직 하나의 노을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고뇌는 달콤하고, 그 슬픔은 즐거우며, 사랑의 불에 타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랑은 다만 사랑 하나를 가짐으로 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 끝없는 상실 끝에 열리는 창이다. 마침내는 단 한 점의 착의(着衣)도 없이 자신을 완전히 내던졌을 때에 비로소 갖게 되는 우주인 것이다. 이렇게 쟁취한 우주는 그렇지만 자칫 변하기 쉽고, 잃어버리기 쉬운 가변성(可變性)이 있다. 사랑이 신호도 없이 달려와서 우리를 태워버렸듯이, 우리들은 그 사랑이 우리들을 언제 떠나가버릴까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절절한 우리들의 사랑, 비록 사랑을 했음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해도 전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것보다 열 배, 아니 수천 배 낫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을 제거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주성분은 사랑이다. 창밖의 저 나뭇가지에 푸른 물이 오르고, 하늘빛이 짙어가듯이, 어느 맑은 날 우리들은 사랑의 물이 오르고 분홍빛 복숭아의 사랑스러운 여자가 된다. 첫사랑의 소롯하고 싱싱한 신록이 되는 것이다.’ (89~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