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 김인숙의 <숨은 샘>중에서
[북데일리] 화창한 날씨에 자연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꽃과 나무 앞에서도 스마트 폰을 내려놓지 못한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자연은 놀라운 감탄사를 불러온다. 김인숙의 단편 <숨은 샘>은 절의 대웅전 풍경으로 시작한다. 붉은 꽃들을 품은 동백나무, 대웅전을 감싸는 햇살, 그리고 작은 새 한 마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글이다.
‘대웅전 앞에는 동백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아직 이른봄이어서 꽃이 만개하지는 않았다. 무성한 가지마다 미끈하게 윤기나는 초록잎들이 촘촘히 달라붙어 있는데, 그 푸른 잎들 사이에 봉우리를 터뜨린 꽃이 겨우 몇송이 보였다. 꽃들은 전부 대웅전 쪽을 향해서만 피어 있었다. 마치 가장 먼저 핀 꽃이 가장 먼저 불전을 행해 얼굴을 들이민 것처럼. 꽃이 들여다보고 있는 대웅전 안을, 나 역시 밖에서 선 채로 들여다보았다.
대웅전 안에도 햇살이 길게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언뜻 들려오는 듯한 날갯짓 소리. 대웅전의 천장 가까이에서 새 한마리가 날고 있었다. 참새보다 조금 커 보이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새였다. 새는 불당에 조각되어 있는 용의 머리에도 앉았다가 다시 날아올라 불상의 어깨에도 앉고, 또다시 날아올라 용의 등에도 앉았다.
새는 아마도 나갈 문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앞문 옆문이 모두 환히 열려 있는데도, 바로 문 가까이 날아왔다가는 또다시 방향을 바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새에게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적어도 불당의 문은 아닌 모양이었다.’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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