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졸우교
장졸우교
  • 정지은 기자
  • 승인 2013.03.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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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북데일리] <장졸우교(藏拙于巧)>는 제목부터 독특하다. ‘자신의 졸렬함을 기교로써 감추다’라는 뜻으로, 채근담에 나오는 장교어졸(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다)을 패러디한 말이다. 여기엔 저자의 겸손이 깃들어있다. 소설과 소설론 사이의 애매한 장르적 위치를 제목에 담았기 때문이다. 책은 20편의 소설을 주제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볍게 들려주는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다. 형식이 독특한 책인 셈이다.


저자는 양선규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과 교수다.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인문학의 보고이다. 작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좋은 소설들은 언제나 인생의 요점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읽고 쓰며 느낀 감동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일파만파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문학 수프 시리즈 첫 편인, 장졸우교(藏拙于巧)는 소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20편의 소설을 주제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볍게 들려주는 에세이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저자로서는 전체가 한 편의 소설로 읽혀지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제목으로 쓰인 장졸우교라는 말은 ‘자신의 졸렬함을 기교로써 감추다’라는 뜻으로, 채근담에 나오는 장교어졸(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다)을 패러디한 말이다. 소설도 아니고 소설론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이 책의 글쓰기가 결국은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생각이 담긴 자조적인 제목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좋은 작품 20편을 골라, 소설적인 틀을 지닌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때그때 조금씩 보탰었다. 그 두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서로를 간섭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인문학의 보고이다. 작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좋은 소설들은 언제나 인생의 요점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읽고 쓰며 느낀 감동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일파만파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자 : 양선규

소설가. 창작집으로『난세일기』, 『칼과 그림자』 등이 있고, 연구서로 『한국현대소설의 무의식』, 『코드와 맥락으로 문학읽기』, 『풀어서 쓴 문학이야기』 등이 있다.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상에는 어디 하나 하찮은 것이라고는 없는 법인데 젊어서는 그걸 잘 모른다. 작가들은 그게 안쓰럽다. 그래서 황석영은 ?몰개월의 새?라는 소설을 썼고, 나는 지금 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황석영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장에서, 방금 같이 담배를 나누어 피우던 전우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보면서, 유치하게 여겼던 술집 작부(미자)의 이별 선물(오뚝이 인형)을 바다(남지나해)에 던져버린 것을 못내 후회했던 것처럼, 나 역시 젊어서 생각 없이 버린 것들을 생각하며 후회한다. 미로迷路속에서의 그 젊은 날들을 일말의 주저도 없이 망각의 바다에 그냥 던져버렸던 것을 후회한다. 내게 청춘은 그저 불우하고 불운한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졌겠는가, 그것을 돌아다보면서 내가 할 일은 아마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로렌 아이슬리가 자서전 ??그 모든 낯선 시간들??에서 말했듯이, ‘비명을 지르며 외면하는 일과 그것 옆에 조용히 누워 보는 일’일 것이다. 만약 그 옆에 누웠다면, 그것에서 비릿한 어머니의 젖냄새가 나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고래 뱃속, 몰...세상에는 어디 하나 하찮은 것이라고는 없는 법인데 젊어서는 그걸 잘 모른다. 작가들은 그게 안쓰럽다. 그래서 황석영은 ?몰개월의 새?라는 소설을 썼고, 나는 지금 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황석영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장에서, 방금 같이 담배를 나누어 피우던 전우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보면서, 유치하게 여겼던 술집 작부(미자)의 이별 선물(오뚝이 인형)을 바다(남지나해)에 던져버린 것을 못내 후회했던 것처럼, 나 역시 젊어서 생각 없이 버린 것들을 생각하며 후회한다. 미로迷路속에서의 그 젊은 날들을 일말의 주저도 없이 망각의 바다에 그냥 던져버렸던 것을 후회한다. 내게 청춘은 그저 불우하고 불운한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졌겠는가, 그것을 돌아다보면서 내가 할 일은 아마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로렌 아이슬리가 자서전 ??그 모든 낯선 시간들??에서 말했듯이, ‘비명을 지르며 외면하는 일과 그것 옆에 조용히 누워 보는 일’일 것이다. 만약 그 옆에 누웠다면, 그것에서 비릿한 어머니의 젖냄새가 나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고래 뱃속, 몰개월의 새」 중에서

황순원 선생의 소설은 언제나 에로티즘을 그 한 가운데에 둔다. 그가 다루는 사랑 이야기는 다종다양하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격동기의 사랑, 육체의 사랑, 심정의 사랑, 신성의 사랑, 소년기 사랑, 청춘의 사랑, 파멸의 사랑, 구원의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름 붙이기 힘들 정도의 오묘한 사랑, 정말이지 사랑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그 중에서도 소년기 사랑에 대한 선생의 특별한 관심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아마 선생은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 꼭꼭 감춰둘 수도 있었던 ‘아들 연인’을 기꺼이 무대 위로 올려보내신 것 같다. 그 덕에 여태껏 내게도 선생이 내리신 지상의 선물이 귀에 생생하다.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라는 소설 속의 한 대목처럼.
― 「벌레 같은 사랑, 소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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