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길을 묻는 인문학 책
인문학의 길을 묻는 인문학 책
  • 한지태 시민기자
  • 승인 2013.02.13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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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인문학 경계하기, 제대로 된 인문의 길 찾기

[북데일리] 인문학 바람이 거세다. 그러나 도대체 인문학이 무엇인지, 인문학의 효용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 역시 거세다. 범람하는 인문학 책 출간에 비례해 유사 혹은 '사이비' 인문학 책 역시 넘친다. 이 혼란스런 상황에서 길을 찾는 움직임이 있다.

<싸우는 인문학>(2013. 반비)은 ‘한국인문학의 최전선’이란 부제를 담고 있다. 여러 가지 함의가 있겠으나, 몸으로 맨 앞에 서서 잘 못된, 혹은 왜곡된 ‘인문학 현상’과 한판 붙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 최전선에는 22명의 저자들이 배치됐다. 전선은 상황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하다. 현재 인문학의 현주소는 다음과 같다.

‘백화점 문화 강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을 법한 수업들이 고스란히 ‘인문학 강좌’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인문학과 관련이 없는 수업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72쪽

‘인문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온갖 종류의 수업이 진행되지만 대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문학과는 별 상관이 없는’ 형국인 것이다.

이런 기현상과 관련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한보희씨가 등장시킨 흥미로운 인물은 안철수 교수다. 그는 ‘안철수는 인문학적 정치인인가’의 장을 통해 인문학이 남용되는 상황을 꼬집고 다음과 같이 근거를 찾았다.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나타남과 함께 인문학이 호출되는 배경에는 무한 경쟁, 승자 독식, 양극화, 사회의 정글화 등의 시장주의 추세에서 벗어나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로 전환하기를 바라는, 그리고 지난 한 세대 동안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로 누적된 피로-가계 부채에서 우울증에 이르기까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소망에 있다고 소박하게 해석해볼 수 있다. 29쪽

표정훈 한양대 교수의 상황 인식은 더 직설적이다. 그는 인문을 앞세우는 책들이 적지 않다는 전제를 깔며 익히 알려진 일부 책은 인문학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나 공병호의 <고전강독>, <리딩으로 리드하라>와 같은 책이다. 이 책들은 일부 독자에게는 인문학을 대중적으로 소개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표 교수는 인문학의 ‘3대 의무론’을 열거한 뒤, 그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나는 인문학은 반드시 알게 쉽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인문학의 소통 의무. 인문학은 반드시 공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인문학에 대한 보호 의무. 인문학은 다른 분야에서 토대 구실을 하거나 써먹을 수 있고 꼭 그래야 한다는 인문학의 유용성 의무'(69쪽)이다.

논쟁이 다분한 내용이다. 인문학이 쉽게 풀이 되지 않으면 그 확산력은 느릴 테고, 써먹을 수 없으면 무용, 아니 적어도 실용적이지는 않다. 바로 여기에 인문학의 고민이 있다. 이에 대한 가장 단순한 답은 서동욱 교수의 펴냄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생각과 욕망이 지나가는 길에 서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을 멈춰 세워 과거의 소크라테스처럼 묻고 싶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가. 너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책은 인문학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텍스트를 제공한다. 진짜 인문학을 접할 각오가 되어 있고, 그 방법을 찾는 이에게 표정훈 교수가 꼽은 책은 다음과 같다.

김용옥 교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의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조동민의 <인문 학문의 사명>,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 최진석 등 공저자의 <불온한 인문학>, 루돌프 파이퍼의 <인문 정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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