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계 `진보=진화`가 아닌 까닭
생물학계 `진보=진화`가 아닌 까닭
  • 북데일리
  • 승인 2007.02.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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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생물 교과서에 나오는 생명의 진화 계통에서 영화 에 나오는 돌연변이체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에서 진화는 진보와 동의어로 간주되어왔다. 이러한 경향은 다윈이 “종의기원”을 발표했던 빅토리아 시기의 영국과 비교해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고생물학자이면서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책 <풀하우스>(사이언스북스. 2003)를 통해 “진화=진보” 라고 잘못 알려진 이유에 대해 고찰한다. 또, 일반인에게 친숙한 야구를 통해 생명 역사에서 진화의 역할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진화론에 진보 개념이 포함된 원인을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찾는다.

우주가 인간을 위해 생성됐다는 유아론적 사고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에 의해 깨지게 되고, 1859년 다윈의 “종의기원”에 의해 인간은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로 격하된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에 있어서 인간중심적 사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진화의 목적을 박테리아에서 시작해서 지구에서 유일하게 지성이 있으며 복잡한 신체기관을 가진 인류가 생기게 되는 긴 여정이라고 제멋대로 해석한다. 또한 기존의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에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옮기게 되는 필연적인 경향이 있으며, 인류의 등장은 생명진화의 종착역이라고 단언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지질학상의 각 시대마다 복잡한 개체들을 몇 개만 뽑아놓고 진화의 역사가 복잡성을 향한 내재된 경향이 있다고 추측하는 건 통계적인 오류라는 설명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야구경기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통계학적 방법으로 논증한다. 야구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은 다소 지루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과학서적에서 찾아보기 힘든 참신하고 쉬운 설명으로 진화론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저자의 설명은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건 타자들의 실력이 떨어졌거나 경기수가 늘었거나, 야구에 집중하기 힘든 매스컴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야구경기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타자들은 100년 전과 비교해서 체격이 좋아졌는데 4할 타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에 상대되는 투수들의 기량 향상, 외야수들의 수비가 월등하게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의 근거로써 메이저리그 100년 역사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와 가장 못하는 선수 사이의 표준편차를 통계학 도표로 제시한다.

도표를 보면 1940년대 이후로는 평형상태에 이르러서 선수들 간의 격차가 거의 없다. 다른 예로, 100M 달리기와 마라톤의 통계자료도 제시하고 있다. 마라톤은 20세기 초에는 3시간이 넘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2시간대 초반의 기록에 머물고 있다. 2시간대 초반에 진입하면서 기록향상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 인간은 뼈와 근육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물리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벽, 여기서 통계학적으로 넘을 수 없는 오른쪽 벽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현대야구에서 4할 타율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오른쪽 벽에 바로 근접한 상태이고, 지금과 같이 야구의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된 상태에서 4할 타율은 앞으로도 넘기 힘들어진다. 여기서 핵심은 “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는 올바른 질문이 될 수 없고, 이것은 4할 타자라는 독립된 개체를 시스템 전체로 생각하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의 폐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4할 타자는 시스템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 시스템의 다양한 변이 중 하나이며, 또한 진화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테리아, 아메바, 삼엽충, 공룡, 인류를 동일선상의 단선적인 계통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며, 생명의 긴 역사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이 중 하나라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논리이다.

생명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박테리아라는 가장 단순한 생물이다. 이것은 35억 년 전에 생겨나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수에 있어서나 유용성에 있어서 그리고 태양이 사라질 때까지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지구를 지배하는 유일한 독재자이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를 박테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진화가 복잡성을 향한 내재적인 힘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째서 복잡성의 정점에 서있는 인간의 수는 그렇게 적은 것일까?” 라는 의문을 통해 박테리아의 편재성에 주목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생명의 역사에서 5번의 대멸종(캄브리아기 이후)이 있었는데, 멸종이 일어났을 때 살아남은 종은 한결같이 크기가 작았다고 한다. 사실 작은 동물이 살아남은 건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존의 진화생물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자연선택의 이점이 큰 복잡하고 커다란 동물이 살아남아야 하는 게 아닐까?”, “고생물학에서의 이러한 발견은 진화론의 일부를 수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책은 이를 게임과 비교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들이 점유공간을 얻기 위해 경쟁을 한다. 자연선택에서 승리한 종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늘려가면서 번성하고, 실패한 종은 멸종이라는 벌칙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 생물체들이 제어할 수 없는 갑작스런 변화(빙하기, 혜성충돌)가 일어나서 지금까지의 규칙을 무효로 하고 배경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멸종에서 살아남은 종은 사라진 대다수의 종보다 결코 우수하지 않다.

6천5백만 년 전에 일어난 혜성충돌로 인해 공룡이 사라지고 포유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포유류가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 생명진화라는 거대한 게임에서 생존이라는 카드를 뽑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진화는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복잡성을 향한 내재적인 경향 같은 없으며, 무작위적인 복권 추첨에서 우연하게 좋은 카드를 가진 포유류가 지금의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생명의 테이프를 6억 년 전의 선캄브리아기에서 다시 돌린다면 현재의 인류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저자는 자연의 진화와 대비해서 문화적 변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문화적 진화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문화는 자연과 달리 복잡성을 향한 내재적인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설명한 밈과 거의 같은 개념인데, 문화는 자연의 진화와 달리 무작위로 움직이지 않으며, 선조의 유산이 후대로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전달된다.

그러나 저자는 문화적 변화 역시 과거에 비해 느려지면서 결국은 평형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과학기술은 당분간 인간의 한계인 오른쪽 벽에 도달하지 않겠지만 공연예술,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창작 분야는 이미 오른쪽 벽에 근접했으므로 미래에는 바흐, 모차르트, 셰익스피어와 같은 천재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정말 그럴까?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고생물학자이면서 현대진화론에서 가장 논쟁적인 “단속평형설”로 단번에 유명해진 진화생물학자이다. 다윈에 의해 시작된 전통적인 진화론은 생명의 시작에서 현재까지 일탈 없는 매끄러운 방향으로 진화를 설명하지만, 저자는 하나의 종은 오랜 기간(몇 백 만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어느 시점에 그동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중첩되면서 짧은 기간에 그 전과 다른 새로운 종이 출현하게 된다는 이론을 발표한다.

단속평형설은 진화론의 최대 약점인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의 해답일까? 옥스퍼드 대학의 리처드 도킨스가 자연선택이 환경에 잘 적응된 분자 수준의 유전자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면, 저자는 지구 역사의 45억년을 가로지르는 고생물학적인 화석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생명은 정교한 톱니와 같은 기계가 아니라, 환원주의로는 파악되지 않는 복잡성과 우연성의 결과물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를 과학자의 조건인 대상(생명)에 대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해야 할까? 그것보다는 35억년에 걸쳐 지구상에 유일하게 의식을 가진 인간의 출현에 이르는 여정이 당연히 일어나야 할 필연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똑같은 방법으로 진행해도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결과라는 인식, 이것이야말로 생명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해답의 단서가 아닐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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