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요? 책은 몸이에요"
"책을 읽는 이유요? 책은 몸이에요"
  • 북데일리
  • 승인 2007.01.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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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영소설 ‘독서가 행복한 회사’ 펴낸 고두현 기자

[북데일리] 입이 열릴 때마다 탐스러운 시어(詩語)들이 맺힌다.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도 “오랜 연인의 배 위에 허벅다리 하나를 얹고 자는 느낌” “햇볕에 잘 말린 보송보송한 솜이불을 덮고 자는 기분”같은 시적 표현이 쏟아져 나온다. 손끝에선 매서운 칼바람이 인다. 그의 손에 의해, 엄밀히 말하자면 손으로 작성된 글에 의해 무수한 책들이 분석되고 평가되고 소개됐다.

한국경제신문사 문화부 고두현(44) 차장. 88년 현 직장에 입사한 그는 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현직 기자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건 기형도 이후 그가 두 번째. 그러고 보니 둘의 이름에서 자음 셋(‘ㄱ’ ‘ㄷ’ ‘ㅎ’)이 겹친다. 우연이라기엔 절묘하다.

십 수년의 기자 생활, 두 권의 시집(‘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출간. 고두현은 때론 밥벌이 수단으로, 때론 삶의 본령(本領)으로 여기며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다. 최근 펴낸 <독서가 행복한 회사>(21세기북스. 2006)는 오랜 글쓰기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온 책. 저장 미디어(DVD, UBS 드라이브 등) 전문기업 이메이션코리아의 독서경영 성공사례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유용한 정보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기자정신이 발동, 본인에게 있어 미개척 분야에 다짜고짜 뛰어든 지 2년. 2005년부터 준비한 책을 난산(難産) 끝에 출간한 그를 한국경제신문사 부근 와인 바에서 만났다.

1인당 연간 매출 10억 원. 비결은 오직 독서

질) <독서가 행복한 회사>는 실제사례를 소설의 형식을 통해 전하는 책입니다. 기사나 시를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작업이었을 텐데요.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답) 소설가를 더욱 존경하게 됐죠.(웃음) 자료를 모아서 정리하는 데 그치기보단 직원들의 생각과 보이지 않는 문화의 힘까지 책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또 글이 촉촉하게 읽혀질 수 있도록 소설이란 장르를 택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소설적 기법을 빌려서 쓴 일종의 다큐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죠. 90%의 팩트(fact)를 가지고, 상황에 맞게 약간씩 살을 붙여나갔습니다. 허구는 팩트를 돋보이게 하는 윤활유 역할에서 그쳐야지, 비중이 커지면 전체 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준비부터 출간까지 2년이 걸린 이유 중 하나죠.

질) 독서경영이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기업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만 200여개의 업체가 독서경영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이중 특별히 이메이션코리아를 선정.소개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답) 독서경영에 있어 가장 이상적으로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막말로, 폼 나는 대기업 이야기를 쓰면 이모저모로 판매에도 유리했겠죠. 그런 메카니즘이 가능하다는 것을 결코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이메이션코리아는 직원이 24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입니다. 작지만 큰 회사죠. 1인당 연간 매출 10억을 달성해내는 업체는 많지 않아요. 이를 가능케 한 힘이 바로 독서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회사의 독서경영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이장우 대표는 창립 1년 만에 IMF 사태를 맞아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전 직원에게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사 보라고 했답니다. 책값은 전부 회사 돈으로 지급하고요. 리포트 제출 같은 의무 없이 말입니다. 책 속에 불황 극복의 지혜가 들어있다는 믿음과 힘들 때일수록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역발상의 묘미’를 발휘한 거죠.

회사가 직원들에게 지급한 책값은 연간 2천5백여만 원. 1인당 100만원이 넘는 액수에요. 그 결과 2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고, 5년 만에 전 세계 60개 법인 중 영업신장률 1위라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모든 직원이 책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법들을 찾았고, 애사심은 물론 서로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하는 ‘윈윈전략’까지 체득한 덕분입니다.

질) 이제 막 독서경영을 도입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메이션코리아의 자유방임적인 운영을 답습하는 일이 불안하지 않을까요. 책을 준비하며 현장을 취재한 당사자로서 독서경영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답) 요즘 독서경영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었지만, 아직도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애태우는 걸 많이 봅니다. 어떤 기업은 필독서 목록을 내주고 독후감을 의무화하면서 이를 평가해 인사고과에 반영하기도 하죠. 이 경우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퇴근도 하지 않고 ‘숙제’에 매달리게 됩니다. ‘약’이 ‘독’으로 변한 거죠. 또 어떤 기업은 책읽기를 장려하고 사내 모임도 만들었으나 이를 조직 전체의 기업문화로 접목시키지 못해 고심하기도 합니다.

방점을 경영이 아닌 독서에 찍어야 해요. 직원들이 책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을 때, 창의성을 기르고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거죠.

CEO와 중간관리자 각각에게 조언을 하자면, 먼저 최고경영자가 문화마인드를 지니는 것이 관건입니다. 직원들의 열정을 조금만 건드려주면 기업문화와 생산성을 바꿀 수 있어요. 중간관리자 혹은 직원들의 경우엔 CEO가 (독서경영을) 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해요. 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거든요. 밑에서부터 시작하면 안 될 이유는 없습니다. 마음 맞는 직원들이 앞장서서 책 읽는 문화를 만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돼있습니다.

“책은 곧 몸이다.”

질) 출판기자 생활을 오래하셨으니 당연히 많은 책을 접하셨겠죠. <독서가 행복한 회사> 본문에 등장하는 멘토북 40권도 전부 직접 읽으신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독서에 대해 나름의 가치관을 세우고 계실 것 같은데요.

답) 독서(讀書)는 우리 몸의 원리를 많이 닮았습니다. ‘읽을독(讀)’은 부수인 말씀언(言)과 팔매(賣)를 합친 글자죠. 팔매(賣)는 날출(出)과 살매(買)를, 이 중 살매(買)는 그물망(罒)과 조개패(貝)를 합쳐 만든 것입니다. 옛날에는 조개껍질을 돈으로 썼어요. 즉 조개(재화나 물건)를 그물로 떠 담듯 모으는 것이 살매(買), 이를 내놓는 게 팔매(賣)입니다. 이는 곧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정보의 양방향 소통행위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책서(書)’는 가로왈(曰)과 붓필(筆)이 만난 데서 알 수 있듯이 성인의 가르침을 붓으로 적은 것입니다. 여기서 가르침은 콘텐츠이자 내용이고 붓은 도구이자 외형인 셈이죠. 이렇게 보면 성인의 가르침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모은 책의 콘텐츠를 온몸으로 소리 내어 읽고 이를 체득하는 것이 곧 독서의 근본 원리라고 할 수 있어요.

우연인 것 같지만, 독(讀)의 부수인 말씀언(言)과 팔매(賣)의 부수인 조개패(貝)는 모두 7획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조개가 콘텐츠라면 말씀은 도구, 내용과 외형의 조화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해석하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또 독서(讀書)의 두 글자 획수를 합치면 32획인데, 이는 인간의 치아 수와 같습니다. 옛사람들이 입으로 소리 내어 책을 읽은 연유를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책이 곧 몸이에요. 편식해서 읽으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질) 이야기를 듣다보니 만만치 않은 독서내공이 엿보입니다. 한 달에 평균 몇 권의 책을 읽으십니까.

답) 문화부 출판 담당기자 앞으로 오는 신간이 일주일에 평균 2백 권에서 2백 40권쯤 됩니다. 그 중에 기사를 쓰기 위해서 5권 정도를 완독하고 나머지는 파악하는 수준이죠. 모두 소화하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불가능해요. 출판기자가 받는 혜택이자 아픔이죠. 많은 책을 접하지만 한 권을 천천히 정독할 수 없으니까요.

질) 십여 년 가량, 기자와 시인이라는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해 오셨습니다. 각각의 글쓰기에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답) 말하자면 이런 거겠죠. 얼음이냐 물이냐. 본성은 같은데 딱딱하고 부드럽고 차갑고 따뜻하고, 이 차이에요. 평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역시 기자로서의 생업이죠. 팩트 위주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글을 씁니다. 오랜 시간 해온 일이니 시인이라고 해도 이런 감각은 살아있죠. 문제는 저널리즘 글쓰기에서 문학적인 글쓰기로 모드를 전환하는 게 어렵다는 데 있어요. 예를 들어 그동안 써놓은 습작시들을 모아서 정리할 때, 일주일 정도 산에 머무르곤 합니다. 한 3일 동안은 그저 나를 비워내는 일에 몰두해요. 모드가 전환되길 기다리는 거죠. 5,6일쯤 돼야 겨우 시에 몰입이 돼요. 얼음이 물이 되기보다 물이 얼음이 되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질)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소설에 재도전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답) 순수문학으로써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은 자주자주 느끼죠. 아직은 꿈으로만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견딜 수 없는 충동이 내 몸을 찢고 나오는 순간까지 미뤄두려고요. 사실 발휘되고 표현되는 것보다 속으로 눌러서 안고 있을 때의 그 느낌이 훨씬 더 애잔하고, 오래가기도 하고요.(웃음)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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