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복음 전파하는 `화가` 신부님
그림으로 복음 전파하는 `화가` 신부님
  • 북데일리
  • 승인 2006.12.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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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명상 드로잉집 `천사` 펴낸 조광호 신부

조광호 신부의 이름 뒤에는 따라 붙는 꼬리표가 많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종교미술학부 교수, 한국가톨릭문인회 지도신부,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대표 등등. 국내 유일의 화가 신부라는 수식어는 얼마 전, 연제식 신부를 화폭의 길로 인도하며 스스로 거두었다. 아깝거나 아쉽지는 않다.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에겐 도리어 부담스러운 칭호였다.

금년 나이 예순.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열정으로 뭉친 조광호 신부를, 명상 드로잉집 <천사>(Art&Caritas. 2006) 출간 기념 전시회장에서 만났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바로 천사"

<천사>는 조 신부가 그린 드로잉 100여 점에, 직접 쓴 시와 산문, 동서고금의 명언과 잠언들을 곁들인 책이다.

"어떤 사람에게서 천사를 보느냐. 아기의 순수한 얼굴에게서 발견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길거리의 부랑자나 도둑에게도 천사의 모습은 조금씩 있어요. 세상에 100% 악인이 있겠습니까?"

그는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성당에서 자신이 만나온 모든 사람이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그림에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것은 불자 친구가 많은 덕분. 천주교의 사제로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데 종교를 따지지는 않는단다. 넉넉한 풍채만큼 마음 역시 널찍하다.

구분을 두지 않는 사귐은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양화부터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판화 및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한 가지만으로는 모든 메시지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형상화할 수 있는 재료와 표현기법을, 그 때 그 때 택해서 작업한다.

"21세기의 특징 중 하나가 통합이에요. 퓨전. 서로 다른 정보를 가져와서 새로운 걸 창조하는 거죠. 우리 예술계가 경직된 부분이 있어요. 조각가, 화가, 판화가로 너무 세분화시키고 있잖아요. 경계를 넘나들 수가 없어요. 잘못됐다고 봅니다."

조 신부가 열을 올리며 강조한 `조화`와 `화합`은 <천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다. 서로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과 텍스트를 하나로 종합할 때, 비로소 생각의 문이 열린다는 게 그의 설명. 책이 던진 화두를 받아, 독자가 `명상`이라는 제3의 창조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해설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어려울 수도 있어요. 편한 책은 아니죠.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어야 하니까."

일반 독자들에게 낯선 방식을 취한 건, 독서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조 신부는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마음에 닿는 구절이 나오면, 책장을 덮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책을 많이 보진 않지만, 사유의 깊이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사고하는데 길이 들지 않아서란다.

자기계발서는 읽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각할 화두를 던지는 대신, 그저 삶을 조정하는 방법을 습득시키려고만 한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닌 `기본`이다. 조 신부는 학생들에게도 그리는 법 대신 보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 교육법은 적중했고, 2년 동안 무려 150명이 전국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 종교미술학부의 2/3에 달하는 숫자다.

비참한 노동자의 현실 본 후 성직자의 삶 택해...

조 신부는 오래 고민하고, 길게 답했다. 한 번 입을 열면 막힘이 없었다. 구속받길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이야기 곳곳에 배어 나왔다. 절제하고 통제하는 수도자의 삶이 갑갑하진 않을까. 이 길을 택한 연유가 궁금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주변의 현실을 인지하게 됐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엔 노동자들 생활이 참 어려웠어요. 임금을 못 받는 일도 허다하고. 고민이 많았죠. 인간의 삶이 왜 양분화되는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치열한 고민 중에 우연히 천주교와 인연을 맺었다. 신부님에게 말씀을 전해 들으며 드디어 빛이 보였다. 비참한 현실을 자기 나름대로 헤쳐나갈 수 있는 길. 미력하나마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건네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성직자의 삶을 결심했다. 유치원때부터 배운 그림은 이미 삶의 일부였기에 병행해나갔다.

조 신부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결코 적지않은 나이지만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내년엔 두 권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가 각종 신문에 기고한 칼럼, 월간 `들숨날숨` 편집인으로 활동할 당시 작성한 글을 묶은 에세이집이 하나. 컬러판으로 재출간하는 <천사>가 나머지 하나다. 컬러판엔 한국가톨릭문인회에서 만나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정호승 시인의 시 100여편이 함께 수록된다. 모두 조 신부의 드로잉을 보고 감흥을 얻어 씌어진 것들이다.

수묵화 전시회도 갖을 예정. `열정이 끝이 없다` 감탄하니,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글과 그림으로 끊임없이 복음을 전파하는 조광호 신부.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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