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빚어낸 그림책 작가들의 `꿈의 공장`
동심 빚어낸 그림책 작가들의 `꿈의 공장`
  • 북데일리
  • 승인 2006.12.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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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필실] 창작 그림책 `딸은 좋다` 펴낸 채인선. 김은정씨.

[북데일리]아이들에게 있어 그림책은 ‘만남’이다. 아직 접하지 못한 세상을 엿보고, 작가가 펼쳐 보이는 상상의 나래에 동참한다. 사람과 삶을 책을 통해 만나고, 배운다. 인생의 향로가 어린 시절 독서체험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그림책 작가들에게 작업실은 단순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 아니다. 아이의 정서에 질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고자 고민하는 ‘연구소’이자, 동심을 빚어내는 ‘꿈의 공장’이다.

그림책 <딸은 좋다>(한울림어린이. 2006)를 함께 펴낸 작가 채인선과 김은정. 그들의 작업실에서 ‘창작의 싹’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① 물감냄새 물씬한 그림 작가 김은정의 작업실

김은정(36)의 작업실엔 컴퓨터가 없다. 컴퓨터를 이용한 디자인이 도입된 지 오래지만, 그녀는 여전히 손수 그림을 그린다. 자로 잰 듯 딱딱 떨어지는 선에서는 정감이 느껴지기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는 삽화엔 정성과 손맛이 살아있어야 한단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아이들은 얼굴이 동그랗고, 입가에 머금은 미소가 해맑다. 동네 어귀에서 종종 마주칠법한 친근한 인상이다. 삽화 전반에 묻어나는 고즈넉한 분위기는 전공의 영향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그녀는, 지금도 동양화 기법을 사용한다. 가지고 있는 채색도구 역시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것들. 가루를 물과 아교에 개어, 물감으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데뷔작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나라말. 2002)부터, <동백꽃 누님>(다림. 2004) <달빛 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나라말. 2005) 등 그동안 해온 작품도 대다수가 고전이다.

집이 곧 작업실이어서 출퇴근이 따로 없지만, 취재 때문에 종종 외출을 하곤 한다. 삽화작업, 특히 고전동화는 고증이 중요하다. 옛 복식과 건물을 재현하기 위해 창덕궁, 비원, 민속촌을 수차례 방문하고 사진을 찍었다. 수집하는 자료가 많을수록 그림이 다채로워진단다. <딸은 좋다>는 현대물이지만 디테일한 묘사를 위해 자료조사가 선행됐다. 자녀가 없는 작가는 초등학교 주변을 배회하며 오고가는 학생들을 살폈다. 입고 있는 옷, 노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우선 머릿속에서 구상이 끝나야 해요. 사소한 소품 하나하나 다 취재가 필요하죠. 사진도 찍고, 여행도 가고. 또 원고에 가장 적당한 장면을 위해 매일 회의도 하고요. 그런 과정들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요. 그림 작가라고, 앉아서 그림만 파고드는 건 아니죠.”

작품 구상이 완료되면 삽화 작업은 규칙적으로 진행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점심 먹고 다시 저녁 7시까지. 집에서 일한다 뿐이지 생활패턴은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졸업을 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기 전, 벽화 일을 할 때 붙은 습관이다.

원화는 작업실 한 켠에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초기엔 인쇄물이 원본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속도 많이 상했다. 먹으로 표현한 점(點)이 책에선 모두 뭉개져 나왔던 것. 이젠 원화지와 인쇄지의 차이를 인지하고, 인쇄에 적합한 스케치 및 채색법을 택하고 있다. 사실, 완성된 작품에 대해선 별다른 미련을 갖지 않는 편이다.

"책은 출간되는 순간, 저를 떠나서 자기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이미 제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래서인지 막상 완성물을 봐도 감흥이 없더라고요."

말과는 달리, 한쪽 벽면을 메운 책장엔 그녀의 `자식`들이 즐비해있다. 이미 품을 떠났다 자신을 다독여도, 쉽게 놓아지지가 않는 모양이다.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게 꽂힌 책 한권 한권에서 애정이 담뿍 묻어났다.

② 글을 위한 집중의 공간, 동화작가 채인선의 집필실

채인선(44)의 집필실은 깔끔하다. 그 외의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청결함. 작가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 덕분이다. 그녀는 절대 교정지를 구기거나, 낙서를 하지 않는다.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연필로 조심스럽게 표시한다.

편집자가 빨간 펜으로 선이라도 그을 경우, 어김없이 원고를 재출력한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소모되는 A4용지만도 엄청나다. 집중도가 흐트러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작은 낙서라도 있으면 글자에 갈 시선이 분산된단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니, 이 정도는 약과라 하겠다.

교정지를 보고 컴퓨터에서 문서를 열어 수정한다. 오직 문서기능만 사용하기에, 컴퓨터라기 보단 타자기에 가깝다. 인터넷 검색이 생활화된 요즘이지만, 그녀는 항시 사전을 이용한다. 책상 위에 펼쳐진 사전은 집필 시에 갖춰져야 할 필수품목이다.

채인선은 1995년 샘터사가 주관 ‘엄마가 쓴 동화상’에 <우리집 안경곰 아저씨>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전봇대 아저씨>(창비. 1997) <오늘은 우리집 김장하는 날>(보림. 2001) <나는 나는 될 거야>(사계절. 2004) <아름다운 감정학교>(아지북스. 2006) 등, 다수의 동화책과 그림책을 펴낸 인기작가. 그런데 여전히 창작이 쉽지 않단다.

“아이들은 굉장히 정확해요. 하기 싫어서 억지로, 거짓으로 만든 책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려요. 아이들이 그림책에서 기대하는 건 즐거움이거든요. 작가의 스트레스가 묻어난 책은 들춰보려고도 하질 않아요. 어린아이가 된 기분으로, 경쾌하고 즐겁게 집필에 임해야 하니까 어렵죠.”

99번이 힘들지만, 1번의 희열감을 맛보기위해 고통을 감내한다. 책 속 주인공의 길을 정확히 감지했다는 확신이 들 때, 그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단다. 천상, 작가구나 싶다.

서가는 동화책, 어린이책 비평서, 인문서로 채워져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건 ‘상징’관련 외국서적. 대학시절부터 ‘상징’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언젠가 문학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징사전’을 만드는 게 꿈이다.

“상징은 문화 예술의 토양을 기름지게 할 자양분입니다. 상징을 소홀히 하면 절대로 문학이 발전할 수가 없어요. 오천년 역사를 오늘의 문화 속에 불러들이려면 주변에 널려 있는 상징들을 주워 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해요.”

확고한 신념을 전하는 입술이 다부지다. 무서울 정도로 글을 파고드는 집중력, 책에 대한 흔들림 없는 의식. 동화작가 채인선을 지탱하는 힘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아이들을 향한 무한하고 순수한 애정이 아닐까. 아이들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반짝이는 작가의 눈망울은, 어린아이의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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