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 `타짜`가 못 마땅한 이유
영화판 `타짜`가 못 마땅한 이유
  • 북데일리
  • 승인 2006.12.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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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최동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타짜>는 잘 알려졌다시피, 허영만 화백의 원작 만화 중 1부 <지리산 작두>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원작은 자유당 말기를 배경으로 하였지만, 최동훈 감독은 그런 시대적 배경을 지우고 80년대로 작품설정을 새로 하고, 주요 캐릭터들도 원작의 인물들을 헤쳐 모아 새롭게 창조해냅니다. 일단 전국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그러한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봐야죠.

하지만 많은 관객이 선택했으니 <타짜> 원작의 영화화가 성공한 것일까요? 원작만화를 먼저 접한 사람들 중에는 영화화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법 들립니다. 그것은 흥행과 재미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원작의 깊이를 온전히 놓쳐버린 영화에 대한 질타입니다.

<지리산 작두>의 핵심은 `도박을 끊는 것` 입니다. 이 곳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결국 도박으로 인해 망가져갑니다. 평경장은 살해 당하고, 짝귀는 귀를 잘리며, 아귀는 결국 한 손을 잃어버리고, 고광열 역시 마지막 판이라고 다짐하고 가지만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누나의 10만 환을 도박에서 잃어버린 고니가 평경장을 소개 받는 것 역시 돈을 갚은 다음 도박을 끊는다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타짜`가 도박을 끊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 기술이 들통나 `빨래질`을 당해 더 이상 도박을 할 수 없거나, 도박의 유혹을 이겨내고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짝귀의 경우 아귀에게 빨래질을 당해서 도박판을 뜨게 된 것이고, 결국 보잘것없는 판을 도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다시 3부 <원 아이드 잭>에서 짝귀는 양로원에서 치매에 걸려 화투패를 들고 있지 않으면 아들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처지가 되어 버리죠. 그러나 고니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루고 도박판을 떠납니다. 그렇기에 그는 2부 <신의 손>과 3부 <원 아이드 잭>에서도 등장인물들을 향해 도박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건넬 수 있습니다. 고니는 화투를 붙잡는 도박 대신에 인생을 택한 셈이죠.

영화가 실망스러운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영화속의 고니는 결코 도박을 끊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박 자체를 인생을 좀 더 부유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합니다. 원작에서 고니의 누나는 고니가 10만 환을 날리고 나서 반쯤 미쳐 버리고, 가족조차 버리고 떠돌이로 살게 됩니다. 그런 누나의 모습은 고니에게 영원히 죄책감으로 남게 되죠.

그가 꿈 속에서 누나의 손을 잡아주니 그의 손목이 절단되는 꿈은 영원히 고니가 떨칠 수 없는 죄책감의 표현이고, 그가 도박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고니의 누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어머니와 중국요리 집을 하고 있고, 고니 역시 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도박에 대해 두려움도 끊을 의지도 없습니다. 마지막 순간 돈을 다 태워버리지만 그것은 도박에 대한 회의감이 아닌 정마담에 대한 분노의 감정일 뿐이죠.

원작은 시대설정이 사회의 격변기인 자유당 말기(이승만 정권 말기)입니다. 사회는 불안정하고, 도박과 조직폭력배, 정치권력이 은밀하게 불륜을 저지르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화폐개혁이 단행되면서 고광열과 고니를 마지막으로 위험에 빠트리는 시기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현재에 가까운 90년대로 이동시킵니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은 `화투로 BMW를 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대를 뒤로 이동시켰다` 라고 연출의 변을 밝힌 바 있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특히 대중영화일 경우 흥행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흥행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핵심을 빠트린 격이네요. 최근에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제작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이 제작이 되겠지만, 대부분 만화의 캐릭터와 이야기만을 차용하면 끝이라는 생각만 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좋은 만화는 캐릭터와 이야기뿐 아니라 왠만한 소설을 능가하는 작품성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타짜>는 훌륭한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보여준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이 되네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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