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데이비스, 재즈의 위대한 영혼
마일즈 데이비스, 재즈의 위대한 영혼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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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라는 이름은 거대하다. 그의 존재를 단순히 ‘재즈음악을 연주한 미국의 트럼펫 연주자’로만 한정짓는 건 난센스다. 이건 마치 파블로 피카소를 ‘그림을 곧잘 그렸던 장인’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인격모독이다.

그렇지만 마일즈 데이비스가 왜 위대한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기란 대단히 힘겹다. 다만 마일즈 데이비스가 남긴 음반 중 가장 유명한 작품들인 ‘Birth Of The Cool’ ‘Kind Of Blue’ ‘Sketches Of Spain’ ‘In A Silent Way’ ‘Bitches Brew’ 등은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특히 ‘Birth Of The Cool’은 쿨 재즈, ‘Kind Of Blue’는 모달 재즈, ‘In A Silent Way’와 ‘Bitches Brew’는 퓨전 재즈(또는 재즈 록)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예술에 있어 어떤 ‘사조’를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탄생시킨 위인의 내면풍경은 과연 어떨까. 그 사람은 우리와는 하나부터 열까지 차원이 다른 존재일까, 아니면 결국 알고 보면 평범한, 약간의 재능과 운이 남다르게 작용한 인간에 불과할까.

을유문화사가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발간한 ‘마일즈 데이비스 - 거친 영혼의 속삭임’(2005)은 20세기 대중문화에 커다란 획을 그은 거인의 삶을 치밀하게 묘사해 간다.

이 책은 우선 856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보는 이의 기를 질리게 한다. 하지만 외양만 보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선 이 책은 대단히 재미있다. 재즈에 대해 지식이 없다해도 읽는데 거의 지장이 없다. 다소 막히는 곳이 나타나더라도, 역자의 상세한 주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무엇보다 재미의 근원은 흥미진진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일생 자체다. 또한 그의 인생이 포괄하는 미국 재즈의 역사, 나아가서는 20세기 중반과 후반 미국 대중문화의 역사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단순한 평전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무엇보다 저자인 존 스웨드의 탁월한 역량 덕택이다. 미국 예일대에서 인류학 흑인문화학 음악학 미국학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그동안 쌓아온 방대한 탐구성과를 이 책 한 권에 집약시켰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필체는 매우 간결하고 쉽다. 공허한 수사 없이 바로 핵심을 향하는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것은 마일즈 데이비스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기본으로, 그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성실하고 치열한 취재의 결과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1926년 5월 26일에 태어났다. 그는 예술가의 전형이었다. 늘 창의성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난폭하며 불안정했으며 마약에 빠져 지냈다. 동시에 다정다감하고 유머러스하기도 했다. 수많은 지인과 여인들이 마일즈의 천재성에 매료되었지만, 동시에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변덕에 질렸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탁월한 소질을 보이던 마일즈 데이비스는 1944년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한다. 전공은 관현악 연주였고, 부전공은 피아노였다. 하지만 그는 학교수업보다는 맨하튼 클럽을 강타하던 비밥 재즈에 매료되었다. 특히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같은 재즈 명인들이 마일즈에게 준 영향은 엄청났다. 재즈에 몸을 바치리라 마음먹은 마일즈 데이비스는 학업을 포기한다.

1945년 10월 마일즈 데이비스는 찰리 파커의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되었다. 본격적인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출발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다. 초기 마일즈의 연주는 디지 길레스피의 어설픈 모방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 날로 비범해져 갔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진정한 재능은 다른 재즈 명인들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연주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뛰어난 연주자임에는 명백하지만, 마일즈의 진가는 ‘스타일’의 창조에 있었다. 1949년에서 50년 사이 녹음된 ‘Birth Of The Cool’은 ‘마일즈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렇지만 1950년대의 마일즈 데이비스는 대중적 인기를 크게 누리던 뮤지션이었다. 극적인 구성으로 멜로딕 한 연주를 펼치는 그의 연주는, 듣는 이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이 1956년 5월 11일 한꺼번에 녹음한 ‘Relaxin`’ ‘Steamin`’ ‘Workin`’ 그리고 10월 26일 연주한 ‘Cookin`’은 마일즈의 왕성한 창의력과 서정성이 한꺼번에 분출된 결과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천부적으로 지닌 거침없는 실험정신과 차분한 우아함은 1959년 모달 재즈의 탄생을 알린 ‘Kind Of Blue’에서 일단 정점에 오른다.

그때 다다른 정점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대의 정신과 호흡에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고민했다. 재즈의 틀을 초월하는 음악세계를 위해 몸부림쳤다는 점에서, 그의 제자였던 존 콜트레인과 공통점을 나눈다.

하지만 콜트레인이 사상과 종교, 명상 등 내면탐구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달리, 마일즈의 관심사는 세상과의 소통, 그리고 외부를 향한 자신의 발언이었다. 스타일의 창조는 저항과 상실감,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려는 복합적 심상의 총체다.

마일즈 데이비스 음악세계의 최고 정점이라 할 ‘In A Silent Way’와 ‘Bitches Brew’는 한때 오해받았듯 ‘상업성과 타협한 퓨전 재즈’가 결코 아니다. 폐쇄와 형식에 갇혀 쇠퇴의 길로 치닫던 재즈가 가야할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가 걸어갔던 방향, 나아가서는 20세기 후반 미국문화가 나아갔던 방향에 대해 더없이 충실하게 묘사한 역사적 증언이다. [북데일리 오공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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