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1 : 혜성서점
헌책방에서1 : 혜성서점
  • 북데일리
  • 승인 2006.12.1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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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서점
02) 741-0143, 011-253-0143

〈1〉 자전거 알아보는 사람

“많이 탔구나. 부지런히 다녔네?”

[북데일리]헌책방 〈혜성서점〉 아저씨는 제 자전거를 보시더니, 다른 데보다 바퀴 쪽을 손으로 만지면서 한 마디 합니다(여태껏 다른 사람들은 자전거 껍데기만 만지며 “이거 비싼 자전거지요?” 하고만 물었는데, “많이 탔구나.” 하고 말한 사람은 이날 처음이었습니다). “네, 늘 자전거로 다니니까요.” 책방 아저씨는 가만히 웃으면서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혜성서점〉아저씨도 짐자전거 한 대를 타고 다니시는데, 당신이 자전거로 책짐을 나르고 부지런히 다니던 젊은 날을 떠올리실까요? 이때는 미처 여쭙지 못했지만 다음에 찾아가서는 자전거로 다니시던 이야기를 한번 여쭈어 봐야겠습니다. 언젠가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은 세상을 떠난 〈공씨책방〉 아저씨하고 어느 헌책방 아저씨 두 분이 자전거를 타고 못 가는 곳이 없었다고, 자전거 한 대만 타면 서울 어디라도 찾아다니면서 헌책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자전거는 기름도 안 먹고 공해도 없고, 웬만큼 많은 책도 거뜬히 실을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에도 많이 싣는다면 많이 싣겠지만, 균형 잡기는 오토바이보다 자전거가 훨씬 낫습니다. 다만,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요. 예전에 제가 신문배달 하던 때를 더듬어 보아도, 오토바이보다 자전거에 훨씬 많은 신문을 싣고 날랐습니다. 다만, 이때에도 오토바이는 ‘조금 적게 싣는 만큼 후딱 돌리고 다시 신문을 싣고 후딱 돌리고’ 했을 뿐.

제가 헌책방을 다니며 이런저런 책을 많이 사는 줄 아는 분들 가운데, “그러면 차를 사야지. 그걸 힘들게 다 싣고 다녀?” 하면서 혀를 차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냥 싱긋 웃고 맙니다. 차 살 돈이면 책을 더 사고, 차 굴리느라 들어가는 기름 값이면 저녁나절에 술 한 잔 가볍게 걸치며 몸을 녹이면 좋으니까요.

요새는 헌책방 임자들도 작은 짐차나 덩치 큰 승용차로 헌책을 사들이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도 자전거로만 다니는 분도 많습니다. 요새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분들 가운데에는 승용차를 몰며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꾸러미씩 고른’ 뒤 차에 가득 싣고 돌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자전거에 실을 수 있는 만큼만 알맞게 책을 고른 뒤, 자전거를 타고 시골집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2〉 책 구경

가방을 내려놓고 사진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땀을 훔치면서 책을 찬찬히 살핍니다. 먼저 (이산, 1997)라는 책이 보입니다. 이 책은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나왔으니 알 턱도 없었지만, 글쓴이 사이덴스티커란 사람을 안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제가 사회에 있을 때 나왔어도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이덴스티커라는 분이 쓴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씨앗을뿌리는사람, 2004)를 보면서 ‘야, 이런 사람도 다 있구나’ 하고 알았고, 이 책으로 이름이 눈에 익었기 때문에 <도쿄 이야기>도 고릅니다. 두 책 모두 글쓴이 사이덴스티커가 가까이한 일본 문화와 삶과 사회와 사람을 찬찬히 들려줍니다. 그러나 일본 문화와 사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또 잘 모른다면 두 가지 책은 재미없을 거예요. 한편, 일본 문화와 사회를 읽으며 우리 문화와 사회를 가만히 돌아보고자 하는 분이라면 두 가지 책이 여러모로 남다른 눈길을 추스르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산드라 자야 - 집시 소녀의 머나먼 길> (민음사,1991)은 이제는 판이 끊어져서 안 나오는 어린이책입니다. 민음사에서 한때 펴낸 세계 어린이책 묶음 가운데 하나인데, 집에 있는지 없는지 가물가물하여 골라 봅니다. 묶음책을 10권까지 낸 것은 아는데, 그 뒤편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10권 가운데에는 <라스무스와 방랑자>, <아이와 강>, <내일은 맑을까요>, <탐험가 슐리만과 잃어버린 도시>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컬러판 세계의 명시 : 이상 시집>(견지사, 1974)은 가로세로 길이를 더해도 한 뼘이 안 될 만큼 작은 책입니다. 요새도 가끔 요만큼 작은 책이 나오는데,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집에 이런 반 토막 수첩만 한 책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국어사전도 요만한 크기로 나오기도 했고요. ‘치크’라고 하는 참고서도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병아리’를 ‘chick’라고 하기에, 요 이름을 따서 ‘병아리처럼 작은 책’이라고 내놓았지 싶습니다. 그때 일들이 하나둘 생각나기에 골라 봅니다.

그림책 <딸기밭의 꼬마 할머니>(한림출판사, 1991)가 보여서 집습니다. 꼬마 할머니는 딸기밭 밑 땅속에서 살아가는 분으로, 햇볕과 물과 잔 돌가루를 섞어서 딸기한테 달콤한 맛과 어여쁜 빛깔을 선사해 줍니다. 어느 날 아직 겨울이 안 갔지 싶은 때 딸기풀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푸른 열매까지 맺히기에 부랴부랴 샘물을 긷고 이것저것 준비해서 잘 익은 딸기마다 빨간 물감을 발라 주는 일을 해요. 그런데 이튿날, 밤새 눈이 내려서 온 들판은 하얗게 됩니다. 할머니는 자기 딸기가 그예 묻혀 버렸다고 슬퍼하는데, 숲속 토끼 한 마리가 다가와서 땅을 파 보니 눈속에 딸기가 얼어붙은 채 그대로 있네요. 이리하여 배고픔에 지친 멧짐승들이 모두 내려와서 딸기를 맛나게 먹고, 슬픔에 겹던 할머니는 웃음을 찾고 땅속 집으로 돌아와 고단한 몸을 쉬며 다시 잠듭니다.

일본에는 딸기밭을 가꾸는 신령으로 ‘꼬마 할머니’가 있다고 믿는지 모릅니다. 또는, 이야기를 창작해 내었을 수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참 좋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한테도 ‘도토리 할머니’라든지 ‘감 할아버지’라든지 ‘감자 아가씨’라든지 ‘오이 머스마’ 이야기를 살뜰히 빚어내어 들려줄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정구미-한국ㆍ일본 이야기>(안그라픽스, 2005)는 언젠가 지나가며 얼핏 보았다가 깜빡 잊고 있던 만화책이에요. 아이고, 새 책으로 사려고 했는데 그만 때를 놓쳤나? 그저 인연이라 생각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사야겠구나 하고 고릅니다.

- [어머니] 73?75쪽

: 우리 집의 책장에는 <여성동아>가 많다. 엄마가 안 버리고 모아 두셨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잡지가 도착할 때마다 나는 섭섭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정말 길었다. 한 번 잡지에 집중하면 깨우기 힘들었다. … 엄마는 갑자기 <여성동아>를 해약했다. 구독 기간은 27년이었다. “엄마, 너무 아깝다. 계속 봐 왔는데.” “괜찮아! 이제는 네가 한국에 있으니까!” 해외배송이라 한 달에 2만 원씩 냈었는데, 전부 다 나의 한국유학비가 됐다. 엄마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한국에서 유학을 한다. 나의 조국을 알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그 잡지처럼 엄마와 한국의 연결끈이 되기 위해.

올해 열린 ‘캐릭터 전시회’에서도 이 만화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래 2006년 캐릭터 대상이라면 이 만화(또는 <뚝딱뚝딱 인권짓기>)가 받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서양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서양 그림결로 그린 만화가 상을 받더군요. 아무튼. 재일교포 2.5세가 한국에 유학을 오며 부대낀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낸 <한국ㆍ일본 이야기>는 ‘피’가 아닌 ‘땀’으로 그린 만화책입니다. 그린이 정구미 님은 인터넷 http://www.koomi.net 에도 틈틈이 새로 그린 만화를 올려놓습니다.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한얼미디어, 2005)라는 책도 고릅니다. 이 책도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네요. 고르면서 속으로 많이 미안합니다. 갓 나왔을 때는 알아보지도 못하고(사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소식도 못 들었고, 이날 헌책방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새책방에 주문해서 사지 못했거든요. “새책은 새책방에서, 헌책은 헌책방에서!”라는 제 잣대가 가끔 흔들리고 맙니다.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을 그때그때 다 알아볼 수 없다는 까닭이 하나, 다 알아보아도 주머니가 가볍다는 까닭이 둘, 달력에 책이름을 적어 놓고 주문해야지 하다가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그만 잊어버리고 때를 놓쳐버리는 까닭이 셋.

.. “그럼 사진은요? 그래도 어린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이라도 있을 것 아녜요?”

“다 불태웠지. 그것을 어찌 가지고 있소?”

그랬을 것이다. 독립운동을 했다, 그것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친척이라면 그 누가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말 그대로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내 닦달을 하고 죽였을 것인데, 어찌 사진 한 장 편지 한 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런 게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모두 태워버려야지. 편지 한 장도 발각이 되면 난리가 나던 세상인데.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땐 그래야 살 수 있었소.”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역사’라는 것, ‘유품’이라는 것은 어쩌면 한 끼의 ‘밥’만큼도 못한 것이리라.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에 역사란 이름을 붙이고 유족이니, 유품이니 가필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 스스로 역사이고, 유품이고, 유족인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 격랑의 물결 속에 그냥 서 있었을 뿐인 그들에게 .. 〈51쪽〉

“법으로부터도 정치로부터도 경제로부터도, 그 무엇으로부터도 그들은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옷을 벗으라면 벗어야 하며, 떠나라면 떠나야 하는 이 그치지 않는 유랑자의 신세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30쪽)” 하고 가슴으로 울음을 내뱉는 이들, 사할린에서 아직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 이들 목소리를 듣는 한국사람은 누구?

‘현대여성생활전서’ 15번으로 나온 <婦道>(여원사,1960)라는 책이 보입니다. <아내가 가야 할 길>이란 소리로군요. 여성생활사, 현대여성의 특징, 부부의 윤리, 내조의 힘, 남편의 직업과 부인의 교양, 남편의 친구와의 대인관계, 권태기의 극복, 직장을 가진 주부의 부부생활, 부부싸움의 해결책, 주부의 위치, 현모양처론, 자녀와 모성애, 가족단락, …… 들을 하나하나 갈래로 나누어 다룹니다. (시)부모 모시기, 이웃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 들도 다루는데, ‘주부의 사용인에 대한 태도’라고 해서 밥어미(식모) 이야기도 있습니다.

.. 식모가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해서 너무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인정상 책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식모의 음식을 주인의 손으로 분량이 적게 정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식모를 배불리 먹지 못하게 하면 훔쳐서라도 먹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음식을 넉넉히 먹도록 허락하고 집안 식구가 먹는 음식이라면 식모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해 주고 별식이나 귀한 음식이 생겼으면 이것은 귀한 것이니 조금씩만 나눠 먹자고 일부러 말로 일러 가면서 함께 먹으면 식모는 절대로 음식을 훔쳐 먹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음식물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식모를 가장 천대하는 것입니다 .. 〈339쪽〉

<婦道> 같은 책이 앞으로도 나올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요즘도 이런 책이 곧잘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지난날처럼 ‘여자는 남자가 사회에서 일을 잘하고 뜻을 펴도록 돕는 노릇을 해야 한다’ 하고 말하지 않겠지만, ‘여성으로서, 또 아내로서 옳게 사는 법’ 따위 책은 있겠지요. ‘주부 요리책’도 이 가운데 하나고요. 그러면 예전에도 없었고 요즘도 없는 ‘남편이 남편답게 사는 법’이라든지 ‘남자가 남자답게 사는 길’을 다루는 책은 나올는지?

〈3〉 쏟아진 잡지

우리나라는 잡지 문화가 많이 뒤처져 있습니다. 그래서 속이 알찬 잡지가 나와도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속이 텅 빈 잡지가 나와도 겉치레와 겉멋에 홀려서 너도나도 그런 잡지를 보기 일쑤입니다. 이런 흐름은,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그러니까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 다시 펼쳐도 ‘우리 마음을 촉촉이 적실만큼 아름답고 훌륭하고 좋은 이야기’로 다가오는 꼭지로 채워져 있느냐, 아니면 ‘이 잡지가 막 나온 어느 한때에만 읽힐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느냐를 보면 알아요. 1975년에 나온 <샘터> 잡지를 요즘 사람들도 찾아서 읽을 만할까요? ‘그때는 그랬지’ 하는 마음 아니고는 이 잡지를 거들떠볼 사람은 드무리라 봅니다. 1977년에 나온 <뿌리깊은 나무> 잡지는 어떻겠습니까? ‘서른 해나 지났는데 어쩌면 이렇게 하나하나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일까’ 하면서 다시 보는 이들이 적잖이 있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잡지 특성이라고 할 텐데, 세상 흐름에 발맞춰 인기를 얻으려는 잡지와, 가벼운 세상 흐름에 맞추지 않고 곧은 한마음과 한길에 눈을 맞추어 우리 자신을 일깨우려는 잡지는 틀림없이 다릅니다. 헌책방에 1970년대 <샘터> 잡지와 <뿌리깊은 나무> 잡지가 같이 들어온다면, <샘터>는 ‘옛책’ 대접을, <뿌리깊은 나무>는 ‘읽을거리’ 대접을 받습니다. 옛책 대접이란 나이만 먹었다는 소리요, 읽을거리 대접이란 한결같이 싱그러운 젊음이 가득하다는 소리입니다.

아무튼. 좀처럼 만나기 힘든 60년대 잡지가 자그마치 여섯 권, 퍽 깨끗한 채로 한쪽에 다른 책더미 밑에 깔려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손때를 많이 타 너덜너덜한 낡은 는 더러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깨끗한 판으로 남은 는……. 그야말로 운이 좋군요. 몇 권 겉장에는 ‘공보부 검인’이란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제가 만난 판은 1968년 4월 29일치, 1968년 4월 15일치, 1968년 2월 19일치, 1968년 5월 27일, 1969년 10월 28일치, 1969년 2월 17일치입니다. 어느 정부기관에 들어가던 잡지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자유생활사)라는 기관잡지 1968년 11월치 하나와 <코리아 라이프>(코리아라이프사)라는 기관잡지 1968년 10월호도 함께 나왔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와 <코리아 라이프>는 박정희 독재정권을 찬양하면서 북녘 정권을 헐뜯고, 마치 대한민국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화롭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인 듯 떠벌입니다. 이 잡지 두 가지와 여섯 권은 거의 펼쳐 보지도 않은 듯이 깨끗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요, 그때를 생각하자면 애써 만들고도 읽지도 않는 엇갈린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 걸쳐서 엄청나게 찍어낸 그 ‘반공책’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학교마다 도서관마다 가득가득 채워 놓던 그 반공책들은?

〈4〉 뻔뻔 자동차

홍제동에서 〈혜성서점〉으로 오는 길에는 뒤에서 빵빵거리는 자동차와 버스 때문에, 또 짐수레를 붙인 자전거가 못 지나가게 길섶을 막거나 갑자기 밀어붙이는 숱한 자동차 때문에 몸살을 앓았습니다. 날도 더운데 짜증이 확확 나게 합니다. 그렇지만, 딱 한 번, 홍제동 언덕길을 올라올 때 뒤에 붙던 자동차는 제가 끝까지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습니다.

이런 일은 참 드뭅니다.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워야 할 일인데,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고맙고 반갑다고 느껴집니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이 자전거를 보면 마땅히 길을 내주거나 빠르기를 줄여야지요. 길을 걷다가 어린아이들이 걸음이 느리다고 해서 소리 꽥 지르면서 비키라고 합니까?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옆으로 밀어붙이면서 걸으십니까? 큰차는 작은차를 아껴 주어야 하고, 크고 작은 모든 자동차는 자전거와 걷는 이를 아껴 주어야 합니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느립니다. 마땅하지요. 어른은 아이보다 빠릅니다. 마땅하지요. 그러면 자동차는 자전거한테, 어른은 아이한테 어떻게 마주해야 좋을까요.

생각해 보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 주지 않기에,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도 않지만, 있는지조차도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지 싶습니다. 새책방이건 헌책방이건 도서관에 묻힌 채 먼지만 잔뜩 먹고 있는 책들도, 알아봐 주는 이가 없기 때문일 테지요. 참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는 책임에도 한두 해도 지나지 않아 판이 끊어지고 사라지는 까닭도, 몇몇 사람은 알아보지만 우리들이 두루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잖아요.

읽는 이는 책을 알아보고, 책 만드는 이는 지은이를 알아보며, 자동차는 자전거와 걷는 이를 알아보아야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눈길을 추스르는 한편, 제대로 알아보도록 우리 마음길도 다스려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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