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복원된 `한국 팝의 고고학`
21세기에 복원된 `한국 팝의 고고학`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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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은 죽었다’고 절망하는가? 체념은 아직 이르다. 최근 발간된 `한국 팝의 고고학 1960`과 `한국 팝의 고고학 1970`(신현준 이용우 최지선 공저. 한길아트)은 이 땅의 대중음악 전통이 결코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을 영원불변의 것임을 또렷하게 증언한다.

이 땅의 대중음악을 생각하노라면, 한숨부터 나온다. 정신 사나운 댄스뮤직 아니면 낯간지러운 발라드 일색. TV를 켜면 노래다운 노래는 좀처럼 찾을 수 없고, 노래 부르러 나온 줄 알았던 가수들은 신변잡기 아니면 농담 따먹기나 하며 키득거린다. 분통이 터진다.

아무리 유행 따라 흘러가는 대중문화라 해도, 여기엔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문화의 진정한 저력이고, 나아가서는 세계 속의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첩경이다.

이런 점에서 대중음악 분야는 퍽 아쉽다. ‘전통의 단절’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음악장르에 깊이를 부여하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이 땅의 대중음악은 말초신경만을 자극하거나 언더그라운드라는 ‘그들만의 게토’로 가라앉기만 한다.

하지만 상황이 마냥 우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 얼마전 반가운 소식이 출판계로부터 들려왔다. 한길아트에서 발간한 ‘한국 팝의 고고학’은 가히 ‘혁명적’인 책이다.

60~7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을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정리한 이 책은 한 페이지만 들춰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 당시를 수놓았던 수많은 가수와 연주자들의 면모가, 마치 오늘날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 책은 지난 3년 간 저자들의 피와 땀이 스며든 엄청난 노고의 결과다. 그동안 한국의 대중음악은 천대받기 일쑤였다. 남겨진 음반도 자료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상황.

이러한 악조건을, 저자들은 불굴의 집념으로 발로 뛰어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다.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된 음반을 찾아, 이른바 ‘콜렉터’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이렇게 귀하디 귀한 음반을 일단 손에 넣으면 바로 데이터베이스화 시켰다. LP 음원을 일일이 CD로 옮기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결실이었던 것.

음원만 확보한다고 이 방대한 작업이 완성된 건 아니었다. 그때 그 시절을 주름잡은 음악계 주요 종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것. 우선 주요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을 열람, 가요 관계 기사는 무조건 스크랩했다. 관련 단행본이나 논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생생함’의 측면에서는 당시 언론매체 만한 것이 없기 때문.

이렇게 자료가 쌓여가자, 생존 중인 음악인을 인터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생존해 있는지, 살아있다 해도 어디에 있는지, 만나더라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과연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지, 걱정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저자들의 끝없는 집념과 노력 끝에, 차츰 과거의 영광을 가슴 속 깊이 묻고 살던 대중음악인은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장년 층이라면 듣기만 해도 설레는 `전설`의 인물들이 입을 열었다(김대환 김인배 이동기 김희갑 이인성 신중현 윤항기 심형섭 황규현 김홍탁 정성조 안건마 강근식 안치행 김기표 등).

‘한국 팝의 고고학’은 이 땅에도 한때는 ‘위대한 대중음악의 시대’가 있었음을 치밀한 고증을 통해 밝혀낸 기념비적인 저서다. 이 ‘위대한’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동시대 세계 대중음악과 견주어 보아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높은 수준임을 의미한다.

위대했던 한국 팝 시대, 그 황금시대는 미처 돌이킬 틈 없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한국 팝의 고고학’은 그 역사를 소름끼치도록 명징하게 복원해낸 21세기 한국문화의 기념비적 노작이다. 동시에 이 위대한 나날은 아직도 우리 곁에 가느다랗지만 또렷하게 현재진행형으로 머물러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하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북데일리 오공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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