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잉크에 묻혀 28년 `인쇄의 달인`
종이와 잉크에 묻혀 28년 `인쇄의 달인`
  • 북데일리
  • 승인 2006.12.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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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달인] ②인쇄의 달인 - 타라TPS 매엽팀 김배수 팀장

※ `책의 달인`은 책과 관련 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 중 우리시대 모범이 될 `장인`을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 편집자 주

[북데일리] 인쇄 전문업체 `타라TPS`에 근무하는 김배수(47) 팀장은 28년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대한교과서에 입사한 그는 화성인쇄를 거쳐 현재의 직장에 이르기까지 반평생을 인쇄업에 종사했다. 그 동안 찍어낸 종이만 쌓아도 동산 몇 개는 거뜬히 나올 정도라니, `인쇄의 달인`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

김 팀장은 인쇄현장의 `산증인`이다. 인쇄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모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왔다. 과거엔 Two color를 찍을 때 3.4명이 필요했지만, 이젠 Five color에도 2명이면 충분하다. 첨단설비 덕에 생산성과 품질이 함께 높아졌다. 그가 맡은 매엽 인쇄는 활판에서 자동화로 발전된 공정. 기계에 종이를 걸어서 원하는 잉크 색을 출력한다.

학창시절 독자들의 골머리를 썩게 했을 교과서, 대교에서 출간된 학습지 `눈높이` 시리즈, 출판사 다락원의 외국어 교재, 한길사 어린이 전집, 영화잡지 `프리미어`, 여성지 `퀸` 등이 모두 김 팀장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들. 월간지의 경우 매달 40종 이상을 찍어내고 있다고 한다.

이 중 기억에 남는 건 외국잡지 `MB Man`이다. 삔트(고객이 원하는 색상을 지칭하는 현장 용어)가 까다로워서 작업에 힘이 들었다. 월간지 `가구가이드` 역시 공을 들이는 인쇄물 중 하나다. 조금이라도 색상이 안 맞으면, 사진 속 가구가 제대로 안 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겐 기계를 다루는 단순 업무로 여겨질지 몰라도, 김 팀장은 "인쇄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백지에 사진과 그림, 글씨를 찍어 유(有)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이내 수긍이 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기에, 예민한 감각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김 팀장은 소리만 듣고 기계의 결함을 파악할 수 있다. 고장은 곧 파본으로 이어지기에, 늘 신경을 곤두세운 덕분이다. 때론 원본의 오타까지 잡아내 수정한다. 그가 지닌 내공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쇄인이 갖춰야할 한 가지가 더 있다. 미적 감각이다. 일반용지와 인쇄지의 미세한 차이를 꿰뚫고, 보다 선명하게 나올 수 있는 색상을 선택해야 한다. 김 팀장은 고객과 싸워서라도 본인이 원하는 색으로 작업한다. 완성된 책자는 자식이나 진배없기에 양보는 불가능하다.

"결과물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기분"은 인쇄인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 고객이 `책이 잘 나왔다`고 감사인사라도 전해오면,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일은 고되고 힘들다. 특히 월간지 마감시기가 되면 밤샘 작업은 필수다. 평소에도 정시 퇴근은 어렵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일을 할 엄두가 안 나더라고"

김 팀장이 인쇄업에 `투신`하고 있는 이유는 단출했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했다. 국내에선 경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선진국일수록 인쇄가 유망직종에 속한단다. 경력 10년쯤 되면 연봉이 4천 5백만 원으로, 타 제조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책의 탄생에 일조한다는 `사명감`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는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인쇄가 차지하는 비중이 7.80%"라고 자신한다.

장인정신과 투철한 프로의식으로 무장한 김 팀장은, 인쇄업에 지원하는 젊은이가 날로 줄어드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훗날 직접 인쇄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기에, 더욱 그렇다. 인원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현장 종사자의 업무는 더욱 가중된단다.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기술이야 들어와 배우면 되지."

사람을 만드는 책. 그 책을 만드는 사람.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김배수 팀장이, 수많은 인쇄인이 아름다운 이유다. 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한권의 책을 위해, 오늘도 그들은 밤을 지새울 것이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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