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데일리
  • 승인 2006.12.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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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무슨 새소리가 띄엄띄엄 들리기에 이 추운 겨울밤 어디서 새끼 새라도 집을 잃고 헤매나 싶어 귀를 기울여 보는데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종잡히지 않습니다. 조금 뒤에 다시, 그리고 또다시. 슬슬 배가 고파지기에 쌀을 씻어서 안치고 고구마도 썰어서 밥에 섞습니다. 다시 자그맣고 갸날픈 소리가 들립니다. 설마……. 전등을 켜서 천장으로 고개를 디밀어 보니 쥐 두 마리가 끈끈이에 붙어 있습니다. 에그.

지난달부터 이 집에 쥐가 다시 들어와 천장이며 벽이며 갉아대는 소리가 나고, 책장 뒤쪽 구석에 쥐똥이 있어서 이를 어찌하나 싶었습니다. 한 달쯤 그대로 두었습니다. 쥐를 잡자니 끈끈이를 써야겠고, 끈끈이를 쓰자니 쥐를 잡아서 죽이는 일인데. 끈끈이로 잡은 뒤 다시 떼어낼 수 없으니까요.

쥐들이 책을 갉아먹을까 보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소리는 그다지 거리끼지 않습니다. 차라리 제가 쥐밥을 해 주며 기를 수는 있지만, 책 갉아먹는다면 안 될 노릇이니.

그런데 이렇게 끈끈이로 자그마한 쥐 두 마리를 잡고 보니, 끈끈이에 잡힌 쥐가 싸 놓은 똥이며 오줌이며 보니,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쥐가 발발 떠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니, 이놈 책들이 저 작은 목숨붙이보다 얼마나 더 소중한가 싶네요.

어릴 적 살던 집에는 쥐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어느 집에도(부잣집 아니라면) 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쥐잡기는 아주 흔했고, 오늘 잡은 쥐처럼 조그마한 새앙쥐가 아니라 어른 주먹보다도 큰 시궁쥐였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이 시궁쥐를 그다지 무서워한다거나 꺼리지 않고 잘도 빗자루로 때려서 잡았습니다. 그때도 끈끈이를 많이 썼고요. 끈끈이는 한 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놓았고(부엌에 하나 툇간에 하나), 독을 탄 쥐약도 곳곳에 놓았으며(스팀 들어오는 마루에 하나 부엌에도 하나 놓았지 싶고), 날이면 날마다 붙잡힌 쥐를 잡아서 내다 버리는 게(참 아무 생각도 없이 쉽게 ‘버렸’지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때, 어린 나날 잡던 쥐와 지금 잡은 쥐는 어찌 다를까요? 어릴 때는 아는 것도 없고 철부지라서, 또 머리에 든 것도 없어서 이렇게 쥐를 쉽게 잡고 쉽게 버렸고, 이제는 머리에 든 게 많아서 죽어가는 쥐 하나 목숨을 보면서 애처롭다고 느끼는지.

농사꾼 이씨 아저씨가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닭도 잡을 줄 알아야 하고 오리도 잡을 줄 알아야 한다고. 손수 닭을 잡아서 닭죽을 끓이거나 닭고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소나 돼지는 못 잡아도 닭이나 오리는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남들이 잡은 소나 돼지나 닭은 거리낌없이 먹으면서, 자기 손으로는 닭 하나 못 잡느냐고, 목숨 죽이는 짓은 남들한테 다 떠맡기고 자기 손은 남들이 죽인 목숨을 젓가락으로 떠먹는 ‘손 깨끗한’ 일만 할 것이냐고.

농사꾼 이씨 아저씨는 ‘쥐 잡는 일’도 ‘그거 잡아야지. 안 잡으면 책 다 쏠아먹는데. 불쌍하고 자시고 할 거 없어. 사람으로 살면 다 해야 하는 일이야.’ 하고도 말합니다.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하는 일. 참 끔찍……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고기 아닌 풀은 어떠할는지. 꽃이나 풀이나 나무는 어떠할는지. 우리가 먹는 곡식도 모두 목숨들인데. 꽃도, 풀잎도, 나뭇가지도 함부로 꺾거나 뜯거나 끊으면 짐승들 죽이는 일이나 마찬가지 아닐는지. 어떤 목숨이든지 함부로 다루거나 만지는 일이 달갑지 않습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 살든, 사람 아닌 목숨으로 태어나 살든, 살아 있는 동안 어찌할 수 없이 내 목숨일 잇자면 다른 목숨을 내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니, 날이면 날마다 ‘죽임’을 저지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 이 땅 어머니들은 늘 ‘죽임’을 도맡아 온 분들입니다. 우리한테 내어주는 밥상을 차리느라, 풀을 죽이고 짐승을 죽여야 하잖아요. 물고기 한 마리를 구워도 비늘 벗기고 머리 자르고 내장 바르고 다 손수 해야 합니다. 오징어 한 마리를 먹어도, 고등어 한 마리를 먹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개 한 마리는 어떻고요.

쥐냐 책이냐에서 저는 책을 골랐습니다. 사람이니까, 내 삶에서 책이 쥐보다 더 크게 차지하니까, 이렇게 해야 할 테지요. 이 집에는 참으로 많은 거미가 살고, 저는 어느 거미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두는데, 거미는 책을 다치게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사람한테 피해를 안 끼치면 그대로 둔다는 것도 참…… 저만 아는, 저만 생각하는 몹쓸 짓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이란 워낙 이렇게 죄만 짓고 사는 짐승인가요? 발걸음 하나만 떼어도 죽임, 끼니 한 번 채우려고 해도 죽임, 책 하나 간수하려고 해도 죽임, 옷 한 벌 입고 방 한 번 따숩게 뎁히려고 해도 죽임.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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