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세상의 하나뿐인 박물관, 찾는이 적어
②세상의 하나뿐인 박물관, 찾는이 적어
  • 북데일리
  • 승인 2006.11.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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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의 방]충북 제천에서 지적박물관 운영하는 리진호 관장

[북데일리] 지적박물관은 발터 뫼뢰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들녘. 2005)를 연상시키는 어마어마한 책 공간이다. 독서광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곳이나 찾는 이들의 발길은 뜸한 것처럼 보였다. ‘불행히도’ 예측이 맞았다. 3개월간 단 한명의 열람객이 없었던 적도 있다.

학예사 월급에, 임대료에 운영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갈 텐데 어떻게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나 싶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더니 “원고료나 강연료를 받아 운영해왔어요. 시에서도 조금 지원을 해주고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리 관장의 농이 씁쓸하다.

“일본에 갔을 때 누가 묻길래 이렇게 답했지요. 세상에 하나 뿐인 박물관이면서 세상에서 열람객이 가장 적은 박물관이라고...”

찾는 이 드문 2300평의 부지에 쌓인 수많은 책들은 노부부와 학예사들의 애정으로 그 질긴 목숨을 이어왔다.

기독교 역사분야, 지적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리 관장은 <한국 지적사>를 집필하면서 11페이지를 쓰기 위해 30권의 책을 사서 2달간 독파했다. 집요한 책읽기는 관심분야의 끊임없는 연구로 이어졌다. 궁금한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책밖에 없으니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책 욕심이 많기 때문에 그야말로 쌀 떨어지지 않는 한은 산다고 내가”

리 관장의 여전한 책 욕심은 <책 사냥 발자취>에 실린 ‘책 사냥, 관리 10대 지침’에서도 발견됐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 따위 사료는 소장자(처)로부터 가능한 한 많이 빌리되 2차 반환 독촉 때까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돌려주지 않는다. 상당한 기간이 지나는 동안 그가 잊어버리거나 죽을 수가 있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내 소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책은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 한권의 책을 복사 요청 할 경우에는 먼저 복사비와 송료를 받고 복사 제본하여 우송한다.

▲필요한 자료는 최소한도로 깍 되 아무리 값이 비싸도 구입한다.

▲중요한 자료는 국내는 물론 외국까지 수집하러 간다.

▲수집한 자료는 집필할 저서에 최대한 활용한다.

하얀 콧수염이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이지만 글에는 이렇듯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다. 특히, 수집과정에서 겪은 각종 모욕과 분노가 담긴 대목들이 그렇다.

‘지은이가 가장 많이 접촉하는 것이 도서관 사서들이다. 이들은 동맹이나 맺은 것 같이 다 같이 불친절하다. 학문 연구를 위하여 온 학자들에게 귀중본이다. 희귀본이다 하여 열람조차를 거부하는 데 그 태도가 매우 권위적이다’

‘귀중본이니 아무나 보여 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 데 그 때마다 나는 서글퍼진다. 귀중본 열람 자격 기준이라도 따로 있다는 것인가? 오주연문(五洲衍文)에는 이러한 글이 있다. “장서가들이 자신이 읽지도 않고 타인에게 빌려주지도 않으면서 비치해 두니 그들 손아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내놓지 않고 두었다가 마침내는 쥐와 좀의 밥이 된다” 지금은 약이 발달되어 쥐와 좀을 방지한다 하여도 책은 백년이 넘으면 삭아서 떨어진다. 천기(天氣)와 같이 나만 갖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책 사냥 발자취> 서문 중

저작물 곳곳에는 수집과정에서 겪은 갖가지 애환이 녹아 있다. 어떤 방법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얻게 되었는지, 책을 소장하게 되었는지 빼놓지 않고 모두 기록해왔다. 1950년부터 해온 스크랩은 이미 100권을 넘긴지 오래다. 집필할 때 참고로 하기 위해 분야별로 정리하고 번호를 붙여 수집, 정리했다. 처음에는 16절지에 풀을 발라 붙였고 나중에는 검은 표지에 누런 종이로 된 스크랩북에 정리했다. 이렇게 정리한 자료들을 종류별로 1호 봉투에 넣어 찾기 쉽게 구별해 두었다. 왜 스스로를 ‘극성스러운 수집가’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만한 삶의 흔적이다.

(사진 = 고아라 기자)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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