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읽는 사계 `꽃들의 웃음판`
한시로 읽는 사계 `꽃들의 웃음판`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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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던 여름도 벌써 저만치 꽁무니만 빼꼼히 내보이는 날들이 이어진다.

24절기의 열네번째인 처서(覰暑)는 음력 7월의 중기, 양력으로는 8월 23일경.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맞이하여 더위를 식힐 수 있다’는 뜻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처서 15일을 5일씩 삼분해, 처음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닷새무렵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열흘부터 논벼가 익는다고 전해진다.

자연의 조화로 사계절의 변화무쌍함과 그 풍류의 허허낙락함은 옛 노래 속에도 점점이 녹아들어 있다. ‘꽃들의 웃음판’(2005.사계절)은 자연을 통해 얻은 인간의 자유와 겸허함을 담은 한시 120편을 묶어낸 글모음이다.

저자인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는 지난해 ‘미쳐야 미친다’(2004. 푸른역사)를 통해 허균, 박지원, 정약용 등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문학과 인생을 연구한 글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조선시대 문학 연구는 `꽃들의 웃음판`으로 활짝 폈다. .

차 달이는 연기

약초캐다 어느새 길을 잃었지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산 스님 물건너 돌아가더니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이네

- 이이 (1536~1584) 산중 山中

정 교수는 한시의 정형미를 살려 5언시는 7.5조로, 7언시는 3.4조로 운율에 맞게 번역하면서 접근하기 어려운 행간의 의미를 맛깔스럽게 풀이해낸다. 봄꽃, 여름숲, 가을잎, 겨울산으로 나눈 계절의 풍광은 저자가 선별한 한시를 통해 잘 드러난다.

지리한 긴 여름 날 폭염에 시달려서

등줄기 땀에 젖어 베적삼이 척척한데

상쾌한 바람 불어 산비를 쏟더니만

한꺼번에 벼랑위에 얼음발이 걸렸구나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 정약용(1762~1836) 불역쾌재행

한시의 매력에 빠져 과거 문인들의 궤적에 탐닉했던 저자답게 한수 한수를 가슴으로 녹여 풀이한 글귀도 인상적이다.

“... 티끌세상 건너가는 일이 하도 팍팍하다보니 뜬금없이 옛 사람들의 이런 놀이와 여유를 부러워도 해 보는 것이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책은 수묵화 같은 한시에 서양화가의 그림을 접목시켰다. 중견 서양화가 김점선씨는 기존 관념을 초월한 파격적 화풍과 디지털 기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온 작가. 이 책에 곁들여진 독특한 기법의 삽화 역시 시공을 넘어 문학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한시의 매력과 상통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나타낸다.[북데일리 송보경기자]ccio@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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